병사가 주머니에서 꺼내 곧바로 띄울 수 있는 정찰 드론
직접 위험 노출 없이 주야간 전투 현장 상황 한눈에 파악
야전 매복·참호전, 시가전 골목·건물 내부 등 사각지대 해소
직접 위험 노출 없이 주야간 전투 현장 상황 한눈에 파악
야전 매복·참호전, 시가전 골목·건물 내부 등 사각지대 해소
[파이낸셜뉴스] 글로벌호크·리퍼·프레데터 등 대형 무인드론은 후방에서 조종되고 병사와의 거리는 수십㎞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큰 목표물과 장거리 전략 정찰·타격 유도·적 수뇌부 정밀 제거 등에 특화돼 있다. 하지만 소부대가 지근 거리에서 벌이는 야전 전투와 좁은 골목·건물 내 사각지대에 진입하는 시가전 상황에선 큰 도움을 받기 어렵다.
14일 군과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 2010년대 초반부터 영국과 노르웨이 방산 업계는 이 같은 공통된 문제에 직면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의 시가 근접 참호전에서 병사들이 시야 밖의 적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내밀다 목숨을 잃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블랙호넷(Black Hornet)은 이런 절박한 필요성에 의해 노르웨이의 프록스 다이내믹스(Prox Dynamics AS)사에 의뢰, 개발된다.
영국군은 병사 한 명이 혼자서 주머니에서 꺼내 곧바로 띄울 수 있는 개인용 정찰기 개발을 의뢰했다. 이 요구 조건은 세계 최초의 초소형 군용 정찰 드론 블랙호넷을 설계하는 계기가 된다.
블랙호넷의 무게는 단 33g, 길이는 약 10cm다. 병사의 손바닥에 올려도 공간이 남을 만큼 작지만, 고성능 센서와 비행 제어 장치가 모두 들어 있다. 최대 비행시간은 25분, 작전 반경은 2㎞로 단 한 번 이륙으로 참호 끝에서 옆 건물 옥상까지 모두 살필 수 있다. 탑재된 고해상도 카메라는 낮에는 선명한 컬러 영상과 밤에도 적외선 모드로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목표를 포착한다.
소음도 거의 없다. 시속 21km의 속도로 야전과 실내를 자유롭게 오가며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이 작은 기체는 내부 관성항법과 비전 기반 위치 인식 덕분에 GPS가 차단된 실내나 도심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
손바닥 위에 올려도 남는 크기와 어디서든 이륙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춘 이 작은 기체는 전장에서 병사의 생존 방식을 바꿔 놓았다. 블랙호넷의 개발은 단순히 작은 드론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작은 기체 내부에 여러 대의 고해상도 카메라, 통신 모듈, 비행제어 장치, 그리고 전장의 더위와 추위, 눈과 비, 바람에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모두 담아야 했다.
초기 시제품은 크기와 무게를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실전에서는 바람과 충격에 취약했다. 개발자는 날개 형상과 비행 알고리즘을 반복적으로 수정하며 소음과 진동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경량 프레임을 완성했다.
대형 드론들이 전장을 넓게 바라본다면 블랙호넷은 이같이 병사 바로 앞 지근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10~20m 앞에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됐다. 블랙호넷을 운용하는 관측병은 사각지대를 정찰해 매복과 위협을 미리 감지한다. 병사들이 직접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도 단 몇 초 안에 아군 박격포의 목표 좌표를 확인·조정하며, 적 병력과 전차·장갑차의 동선 등 전장의 상황을 한눈에 장악할 수 있다. 이 능력이 바로 블랙호넷의 가장 큰 장점이다.
조작은 병사가 휴대하는 소형 디스플레이 단말기 하나로 이루어진다.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은 실시간으로 화면에 표시되며 동시에 단말기에 저장돼 이후 분석과 보고에도 활용된다.
지난 2013년 영국군 특수 부대에 처음 시범 배치된 블랙 호넷은 건물 내부 구조 파악과 참호 속 적 위치 확인에 큰 성과를 거뒀다.
이 피드백은 곧 최신형 블랙호넷 개발로 이어졌다. 더 긴 비행시간, 더 선명한 영상, 그리고 야간 작전까지 가능한 적외선 카메라가 추가됐다.
블랙호넷을 개발한 노르웨이의 프록스 다이내믹스사는 지난 2016년 미국의 플리어 시스템즈(FLIR Systems)에 인수됐다. 현재는 모기업 텔레다인 플리어(Teledyne FLIR)가 중량 70g에 더 조용하며, 더 오랜 시간 비행하고 바람에 더 잘 견디며, 장애물 회피 기능과 향상된 고해상도의 카메라를 장착한 '블랙호넷 4' 버전 등 다양한 최신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 기체는 영국군을 시작으로 노르웨이,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나토 회원국에 채택됐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급된 블랙호넷은 참호 구간의 사각지대 정찰에 쓰인다. 모퉁이 너머의 적 움직임을 사전에 확인해 불필요한 교전과 피해를 줄였다.
영국군과 미군은 해외 파병지에서 건물 진입 전 복도 문뒷공간을 미리 파악해 돌발 교전을 피하고 진입 시간을 단축했다. 전장의 현실을 보면 우크라이나 전선이든 중동의 시가전이든 건물 내부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곳곳에 쌓인 전해와 부서진 복도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부비트랩까지 이런 환경은 지상에서 움직이는 정찰드론에는 큰 제약이 된다.
장애물을 우회하느라 속도가 느려지고 정찰 반경 역시 제한적이다. 반면 블랙호넷은 공중에서 장애물을 넘고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더 넓은 범위를 관찰할 수 있다. 초소형 기체는 가벼운 휴대성으로 병사가 언제든 꺼내 띄울 수 있고 지상의 드론보다 훨씬 빠른 기동과 확장된 시야를 제공한다.
바로 이점이 복잡한 지형에서 초소형 지상 정찰 드론을 앞세우는 이유다. 블랙호넷은 전장을 넘어 재난 구조, 범죄수색, 산업 점검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붕괴 현장, 위험 지역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에서 작지만, 민첩한 특성을 살려 사람의 한계를 대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악과 도심이 밀집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전투의 무대는 중동이나 우크라이나처럼 넓은 평야가 아니라 산악 지형과 복잡한 시가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환경에서는 좁은 공간과 엄폐물 사이를 기동하며 실시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초소형 드론의 필요성 또한 강하게 요구될 수 있다.
한국도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민간 방산 업체들이 실내 도심 전투에 적합한 마이크로 드론의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전해졌다.
현재는 상용 부품 기반 시제품을 만들어 내며 카메라 통신 비행안정성을 개선하는 단계로 일부 모델은 군부대 시범 운용을 거쳤으나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호넷과 같은 초소형 정찰드론의 개발과 보급은 한국의 전장 환경에 맞는 전술적 필요성에 의한 전략적 선택이 될 전망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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