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그륜 애플 크리에이티브 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인터뷰
김그륜 애플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는 16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향후 인공지능(AI)이 창작과 예술 지형을 완전히 뒤바꿀 것으로 예측했다. AI에 의해 창작자가 대체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싹 트는 가운데, 김 디자이너는 유연한 사고와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그륜 디자이너는 오는 25일 파이낸셜뉴스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공동주최하는 'AI 월드 2025'에서 'Rethinking Creativity with AI'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다음은 김 디자이너와의 일문일답.
―현재 작업에 AI를 사용하고 있는가.
▲실무에서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AI는 제작 전 단계에서 굉장히 유용하다. 또 일부 특정 상황에서는 기존 파이프라인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촬영이 필요하거나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하기 부담스러운 장면은 AI로 해결할 수 있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AI를 활용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술적 한계나 어려움은 무엇인가.
▲아직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촬영이나 CG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가 나온다면 AI의 효율성은 극대화될 수 있다. 수정 용이성도 떨어진다. 결과물이 정확히 의도한 대로 나오고, 이후에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수정이 가능하다면 기존 파이프라인을 대체할 수 있다. 현재는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수많은 프롬프트 수정과 레퍼런스 제공을 반복해야 하고, 그럼에도 의도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가끔은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결과가 나와 창작의 확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빅테크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영상 AI’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진단해달라.
▲AI 영상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아직은 특유의 ‘AI 느낌’이나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은 기술 발전으로 개선될 영역이라고 본다. 머지않아 전체 영상 단위의 제작도 가능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런 변화가 본격화되면 우선 소규모 광고나 단순 제작 파이프라인은 빠르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대형 스튜디오가 만드는 하이 퀄리티의 영상에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비슷한 패턴의 AI 영상이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고, 결국 시장은 더 독창적이고 새로운 연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업계는 단순히 효율성에 그치지 않고, AI 기술을 활용해 차별화된 연출과 높은 완성도를 연구해야 한다.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기존의 작품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높은 퀄리티를 가진 결과물이 AI로 제작될 것이고, 이후에는 다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이 등장할 것. 특히 소규모 프로덕션이나 개인의 역량이 크게 확대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창의적 작품들이 활발히 나오게 된다고 본다.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인터렉티브(상호작용) 예술이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거나 실시간으로 작품이 변화하는 형태가 AI의 도움으로 훨씬 더 쉽게 구현될 수 있다. AI와 다른 기술의 접목을 통해 접근성이 크게 낮아지고, 그 속에서 전혀 새로운 예술적 경험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테크닉’적인 부분의 차이가 없어진다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AI 영상 공모전 심사를 진행하면서 본선에 오른 작품들을 보니, 약 80%는 전문가의 작품이었고 20% 정도는 비전문가의 작품이었다. 작품만 봐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 차이는 영상의 흐름과 연출 아이디어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비전문가도 전문가 못지않은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발전과 흐름과 연결성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전문가의 안목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AI가 이런 부분까지 보완해줄 수 있겠으나 평균적인 알고리즘 기반 연출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더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 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본선에 오른 비전문가 작품이 20%가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AI가 기존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유연하게 융합하는 역량이 새로운 형태의 전문가를 정의하게 될 것이다.
―창의적인 영감을 얻는 과정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AI가 인간 고유한 창의성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AI에 업무를 맡길 경우 창의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다만 가끔은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는 영감을 얻기 위해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직접 찾기보다 AI를 활용해 생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특히 기존의 레퍼런스를 서치하고, 그것을 다시 AI로 확장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기존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또 AI를 활용하면 아이디어를 재해석하는 과정도 훨씬 빨라진다. 효율적으로 절약된 시간은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투자할 수 있다. 기존의 방법과 AI 활용이 융합될 때, 새로운 차원의 창의성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AI 기술의 발전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영역과 핵심 역량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특정한 영역을 '대체 불가능하다'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에 맞춰 유연하게 사고하며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점점 더 완벽한 결과를 향해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은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창의성을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카메라 기술은 노이즈 없이 완벽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실제로 리얼리티를 연출할 때는 의도적으로 노이즈나 색수차 같은 불완전함을 넣어 아날로그적 질감을 구현한다. 이러한 불완전함과 우연성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태도가 AI 시대에도 중요한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을 꿈꾸는 학생이나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이 있다면.
▲첫째, 기존의 방법을 충실히 준비하면서 동시에 AI 소식을 꾸준히 눈여겨봐야한다. AI 활용은 기존 방식보다 배움의 허들이 훨씬 낮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부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전공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흥미로운 AI 기술이 나오면 과감히 접해보라. 둘째, 전문가로서의 기본 역량은 여전히 중요하다. 기존 파이프라인을 익히고 실력을 쌓는 과정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협업과 소통의 능력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는 대규모 스튜디오뿐 아니라 개인이나 소규모 작업에서도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그룹 활동이나 분야 간 접목을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연성과 실행력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핵심 태도다.
―AI를 활용한 창작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는 무엇인가.
▲첫째, 제작 과정에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필터링과 제어 장치를 강화하는 AI 회사의 책임이 중요하다. 특정 인물이나 기관, 기존 작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모방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구글의 'SynthID'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워터마크를 삽입해, 결과물이 AI로 제작되었음을 사후에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는 개인의 책임이다. AI를 활용하는 크리에이터 스스로도 윤리적인 기준을 지켜야 한다. 특히 단순 모방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피하고, AI를 통해 더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콘텐츠 제작'이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다.
―에미상을 수상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프로젝트에 현재의 AI 기술을 활용했다면 달라졌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AI를 활용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타이틀 화면 같은 작품을 더 나은 퀄리티로 제작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제 당시 결과물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객과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나온 산물이다. 단순 효율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시점에서 가장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더 중요했고, 그 답은 여전히 기존의 파이프라인이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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