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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진단] 지역소멸 위기 벗어나려면… 지역 특성 맞춘 인구전략 세워야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17 18:57

수정 2025.09.17 18:57

인구소멸 특별법 제정 5년
정부 정책 성과표 중간 점검
매년 대응기금 1조씩 쏟았지만
소멸위험 지역 오히려 17곳 늘어
지난해 인구 증가한 지역은 8곳
정책으로 인구 증가 가능성 보여
예산군, 충남도청 이전 효과 톡톡
가평군, 출산 정책으로 청년 체류↑
중앙정부 획일적 정책으론 역부족
[논설실의 뉴스 진단] 지역소멸 위기 벗어나려면… 지역 특성 맞춘 인구전략 세워야

지난 2020년 '인구감소 지역 지원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5년이 흘렀다. 이듬해엔 심각한 인구감소 지역으로 전국 89곳을 지정했고, 2022년부터는 지역소멸 대응기금을 매년 1조원씩 투입하고 있다. 지역소멸은 극복되고 있을까. 아니다.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 지역은 2022년에 113곳(49.6%)이었는데, 지난해 130곳(58.9%)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그래도 그 기간에 위기지역 89곳 가운데 4곳, 1년 기준으로는 8곳에서 인구가 증가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정부 정책을 중간 점검해 본다.

■"사람이 늘어난다" 8개 지역의 기적

최근 1년 통계로 지역의 인구 추세를 판단할 수 없다. 시혜성 이주비용을 지급하는 등의 단기성 유인책은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지역별 인구는 1년, 2년, 4년의 세 기간별로 분석해 보았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반으로 추이를 확인한 결과,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전년 대비로 지난해 인구가 늘어난 곳은 총 8곳이었다. 충남 예산군, 경기 가평군, 인천 강화군, 전남 신안군, 경북 울릉군, 전남 영광군, 전북 순창군, 경북 안동시다. 재정 투입 등 정책적인 노력으로 지역 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지역들이다. 2년 기준으로는 예산, 가평, 신안, 울릉, 순창 등 5곳, 4년 기준으로는 가평, 울릉, 강화, 예산 등 4곳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꾸준한 상승지역은 4곳 '반토막'

데이터 추이를 보면 예산군과 가평군의 성과가 돋보인다. 예산군은 2024년 인구 증가율이 전년 대비 0.53% 늘었다. 2년 기준으론 0.89%, 4년 기준 역시 0.22% 증가해 안정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13년 충남도청이 옮겨간 내포신도시로 전입한 인구가 늘어난 게 예산 인구 증가의 기폭제로 보인다. 관청 이전과 지역개발이 인구 이동을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산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예산시장에 들어서니 활기가 넘쳐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인파가 늘기 시작했다. 다른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예산군은 산업단지 개발과 기업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올 6월 예산 제2산단을 준공한 데 이어 대규모 산단 개발을 추진 중이다. 스마트공장 건립 등 기업친화 정책을 펴면서 교육, 주거, 복지 등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것도 인구 증가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가평군도 지난해 인구가 0.36% 증가했고 2년 평균으로는 0.30%, 4년 평균은 0.06% 증가로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평군은 서울과 가깝고 자연환경이 좋아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있지만, 예산과 같이 소멸위험지역이다. 가평군은 결혼출산TF팀을 운영하는 등 젊은 층을 잡고 체류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여느 농촌 지역과 다르지 않게 청년층이 떠나고 주민들이 고령화하고 있다. 강원 화천군과 가까운 쪽으로 이동하니 인적이 드물어 썰렁한 분위기였다. 화천군 사내면에서 만난 택시운전사는 지역을 먹여 살리던 군부대가 없어지면서 지역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멸위험지역인 신안군과 순창군도 인구가 늘어나는 성과를 봤다. 신안군은 1년 0.36%, 2년 0.42% 증가했다. 4년 기준으로는 0.49% 감소로 집계됐다. 순창군은 1년 0.22%, 2년 0.18% 증가했지만 4년 기준은 0.90% 감소다. 두 지역은 2022년을 전후로 인구수가 바닥까지 갔다가 꾸준한 인구증가 정책으로 상승 반전했다. 인구 감소로 홍역을 앓던 강화군, 영광군, 안동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로 전환한 지역이다.

■지역 맞춤형 전략이 성공 비결

가평군, 예산군, 영광군은 산업단지를 포함한 대규모 지역개발이 효과를 발휘한 곳이다. 가평군은 중소 규모 아파트 건설을, 예산군은 도청 이전에 따른 내포신도시 개발을, 영광군은 행복주택과 민간아파트 공급으로 인구를 늘렸다. 산단 등 일자리 확충과 인프라 건설, 주택 공급은 인구 유입과 정주를 위한 핵심 조건이다.

직접적 재정지원과 소득보강형으로 인구를 늘린 곳은 신안군이다. 신안군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햇빛연금'을 도입했다. 연 최대 600만원의 소득보전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신안군에 가보니 해안가 곳곳에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주민들의 수익원이다. 에너지 연금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살 만하고 볼만한 지역으로 가꾸기 위해 섬 하나에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조성하는 '1도(島) 1뮤지엄'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목포에서 다리를 건너 압해도에 들어서니 '저녁노을미술관'이 나타났다. 섬 구석에 자리 잡은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올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보러 온 가족 단위의 관람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압해도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큰 해상대교 두 개를 지나면 자은도 둔장해변에도 세계적 수준의 '인피니또 뮤지엄'이 공사 중이다.

청년, 은퇴자, 외국인 등 외부 인구를 유입하는 이주·정착 촉진형은 안동시와 순창군이다. 안동시는 대학생 전입 장려금이라는 인센티브로 단기간에 많은 인구를 늘리는 효과를 봤다. 순창군도 대학생 생활지원금 정책을 활용했다. 안동시는 외부 대학생을 끌어오는 게 목적이라면 순창군은 청년층의 전출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런 지원책은 단기적 효과에 그칠 수 있다. 지역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안정적으로 정주하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이탈을 막을 수 있다.

■일본·대만도 수도권 집중 후폭풍

일본과 대만도 지역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4년 '마스다 리포트' 선언을 계기로 '지방창생(地方創生)'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수도 도쿄로 인구가 쏠리면서 지역이 텅텅 비자 범국가적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지방창생 정책은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방 발전사업의 효과는 재정 투입에 비하면 미흡했다. 지자체 간 인구 유치전이 심해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립대 차상용 교수는 "일본에서 성공 모델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둔 정책과 지방 주도의 자립이라는 두 축을 놓고 혼선이 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더 중앙정부 주도로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속성이 강하다"면서 "그렇다 보니 지방의 다양성을 놓치고 획일적인 계획으로 성과를 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과 문화적 정서가 한국과 닮은 대만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더 나은 취업 기회를 얻기 위해 도시로 이주해 도농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졌다. 이에 대만 정부는 지난 2019년 일본과 같이 지방창생 프로그램을 가동해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 층의 귀향을 독려하고 있다. 대만의 최고 학술연구기관인 중앙연구원의 양원산 사회학연구소 교수는 "대만은 지역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지역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자원이 부족한 편"이라며 "정부 정책의 효과를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규모는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베끼기' 넘어 문제해결 정책 시급

지역소멸 해법에 왕도는 없다. 지역 사정에 잘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 지역의 성공 사례와 일본·대만의 시행착오를 참고해 몇 가지를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대규모 지역개발형 정책은 가장 확실한 인구 유인책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공공기관 2차 이전계획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1차 혁신도시 계획은 사실상 실패했다. 혁신도시는 지역 간 나눠먹기로 전락했다. 교육과 거주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아 혁신도시로 간 임직원들이 정주하지 않았다. 김정석 한국인구학회 회장(동국대)은 "기존의 지역균형발전 정책들은 나눠먹기식으로 물리적인 분배에 그친 게 아닌가 싶다"면서 "지역 특성을 살려 배치해야 해당 기관이 이전한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주할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인구증가 목표를 정밀하게 설정하는 방식이다. 한 해 전체 인구가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매달릴 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 비율' '청년 유지율' '출산율' 등 각 지역에 적합한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김 회장은 "(인구 증가나 감소가) 출산 등에 따른 자연 증감인지 외부 인구 유입에 따른 사회적 증감인지 구분해야 한다"면서 "해당 지역에 인구를 늘릴 만한 어떤 매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셋째, 기존 인구를 지켜내고 외부 인구를 끌어오는 통합적 접근도 요구된다. 인구 순증은 빠져나가는 것보다 유입되는 게 많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도 정주하는 인구가 줄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전국 지역소멸 지자체들은 서울과 수도권 인구를 끌어가려는 경쟁자다. 찍어낸 붕어빵 같은 출렁다리와 음식축제가 인구 유입책이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각 지자체의 독립적인 문제해결 의지다.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표심 잡기용 인구증가책은 재정낭비만 부를 뿐이다.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에 편승해서는 지역에 특화된 정책을 펴기 어렵다. 나가사키현립대 차 교수는 "한국의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본 지자체의 성공 사례도 찾아보면서 지역 간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정부도 우리만의 독특한 환경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만 중앙연구원 양 교수는 "대만이 일본의 지역 활성화 개념을 도입할 때 자국 상황에 적합한지 판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은 우리로서는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jjack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