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감독, 프로듀서 사례 발표, 경험 공유
[부산=신진아 기자] 배우들의 외국영화 출연을 비롯해 공동 제작 등 글로벌 협업은 꾸준이 이어왔지만, 글로벌 OTT가 콘텐츠 소비의 국경을 허물고, 또 OTT 붐에 따른 한국 영화 시장 축소로 인한 투자 경색, 위험분산을 위한 돌파구로 국제 공동 제작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는 '다시, 아시아영화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18일부터 4일간 포럼 비프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 프로듀서 에이코 미즈노는 18일 열린 ‘2025 포럼 비프’에서 일본 영화계의 국제 공동제작 흐름과 변화를 짚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75’와 ‘르누아르’ 등을 프로듀싱한 그는 “일본에서는 매년 600~700편의 영화가 제작·개봉되지만, 국제 공동제작은 20~30편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일부 작품이 세계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즈노는 201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공동제작에 뛰어들었다.
변화는 치에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랜75’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일본·프랑스·필리핀·싱가포르 4개국 합작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2022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돼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받았다. 미즈노는 “데뷔작 감독이 오리지널 각본으로 큰 예산을 확보하기는 어려웠지만, 대형 스튜디오 해피넷이 공동제작의 취지를 이해하고 힘을 보탰다”며 “국제 공동제작이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을 갖춘다는 신호가 됐다”고 회고했다.
‘플랜75’는 해외 영화제의 호평에 이어 일본 내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여러 스튜디오로부터 협업 제안이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도에이 같은 대형 스튜디오가 인디 프로듀서와 손잡고 공동제작을 추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공동제작 전담 부서를 신설한 스튜디오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미즈노는 “대형 스튜디오의 참여가 인디의 입지를 좁힌다는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공동제작 환경을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중요한 것은 양측이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국제 프로그램 참여" 독려
하야카와 치에 감독도 목소리를 보탰다. 그는 “국제 프로그램 참여는 창작 지원을 넘어 작품 완성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며 “예술영화가 자국 시장에서는 상업성 부족으로 외면받더라도 해외 영화제를 통한 배급 기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흥행이 저조했지만 프랑스 개봉 2주 만에 일본의 6개월 성적을 넘어선 동료 영화인의 사례를 들며 “해외 시장을 겨냥한 제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장건재 감독이 대표적인 국제 공동제작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한·일 합작 영화 ‘한여름밤의 판타지아’(2014)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2023)를 통해 협업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차기작은 한·일 배우를 중심으로 일본·대만·프랑스 합작 체제를 구축해 촬영하고, 후반 작업은 유럽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년간 한국 독립영화 산업은 인건비 상승, 52시간제 도입, 공적 지원 축소, OTT 확산 등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지고 있지만, 독립예술영화의 진짜 글로벌 시장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차기작으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국제 합작 영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장 감독은 "한국·일본 배우를 중심으로 캐스팅해 세 나라에서 촬영하고, 후반작업은 유럽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 감독은 발표에서 “10대 퀴어 성장 이야기는 이미 세계 영화계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라며, “나는 누구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가, 진정한 관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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