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달콤한 독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4 18:26

수정 2025.09.24 19:02

홍예지 경제부 차장
홍예지 경제부 차장
2차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이 한창이다. 위기 때마다 정부는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고 나선다. 소비쿠폰, 전 국민 지원금, 각종 보조금과 정책성 지출이 줄을 잇는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경기부양, 민생안정, 경제 선순환. 그러나 그 끝은 뻔하다.

재정의 대가는 국민의 세금이며,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몫이다.

지금 쓰이는 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 돈은 미래의 세금으로 되돌아온다. 소비쿠폰 한 장, 몇십만원의 지원금이 당장은 반갑겠지만 그 재원은 모두 국가채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다. 그리고 그 채무는 언젠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부채가 된다.

물론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 있다. 경기침체기,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돈을 푸는 것이 맞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재정이 반복적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 민심을 얻기 위한 단기적 인기 정책이 퍼주기식 예산으로 이어진다.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일수록 오히려 재정 건전성에는 독이 된다. 선심성 정책은 달콤하지만, 그 뒤에는 쓴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장기재정전망은 충격적이다. 지금의 재정구조를 그대로 둘 경우 2065년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73.4%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2048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64년에는 기금이 바닥난다. 건강보험도 2033년부터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노후를 지탱할 사회안전망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고, 국가재정은 기울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돈을 풀며, 선심성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장기적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밀리고, 눈앞의 지출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금은 재정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안일한 태도가 오히려 가장 위험하다고. 일본이 국가채무 200%를 버티는 건, 세계 최대의 해외 순자산 보유국이며 자국 통화로 빚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채무비율이 100%를 넘어서는 순간,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할 것이다. 신용등급 강등, 외환시장 불안, 금리 급등이 도미노처럼 따라올 수 있다.

경제는 정직하다.
덜 걷고 많이 쓰는 나라, 정치적 인기만 좇아 재정을 남용하는 나라에 돌아오는 것은 결국 재정파탄과 세금폭탄뿐이다. 지금의 안일한 지출은 곧 미래의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진짜 민생을 위한다면 지금 필요한 건 현금 살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재정운영 원칙의 확립이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