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가맹시장 흔드는 졸속 입법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5 18:26

수정 2025.09.25 18:32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최갑천 생활경제부장
편의점을 보면 한국사회의 압축판이다. 자고나면 트렌드가 바뀐다. 두바이초콜릿이 휩쓸더니 어느새 수건 케이크, 밤티라미수가 유행한다. 요즘은 '몽골 아이스크림'으로 불리는 프로즌소르베가 10대들의 아이콘이다. 강력한 접근성을 내세웠던 편의점이 이제는 '킬러 상품' 없이는 장사가 안 된다.

유행주기는 한달도 못 간다. 그러니 편의점 상품개발자들이 죽을 맛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수용성이 빠른 가장 빠른 민족답다. 한국을 신제품 '테스트 베드'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높은 교육열,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 사회적 개방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이런 특성이 극대화된 분야가 또 프랜차이즈(가맹사업) 시장이다. 지난 1979년 1호점을 낸 패스트푸드 전문점 롯데리아가 가맹사업의 효시로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가맹본부는 8802개로 9000개에 육박한다. 가맹브랜드 수로는 1만2377개이며, 전체 가맹점 수는 36만5014개에 달한다. 매년 수백개의 가맹브랜드가 사라지고 생기길 반복한다. 가맹사업 종사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대략 150만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고용 등 경제유발효과 측면에서 국가경제의 한 축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와 정부가 추진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으로 시끄럽다. 개정안의 핵심은 가맹점주 단체 등록 의무화, 본부의 협의 의무 강화다. 그동안 가맹본부의 갑질 문제는 끊이질 않았다. 가격통제, 물품 사용 강요, 과도한 가맹금 요구 등으로 욕을 먹었다. 그런 면에서 개정안의 방향은 일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법 개정의 프로세스를 보면 우려스럽다. 명분은 '점주의 협상력 제고'다. 그러나 현장에서 법을 집행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조차 부담 가중, 갈등 심화, 산업 위축을 이유로 신중론을 피력해 왔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국정감사 이슈분석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자 행정부가 강력한 입법부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그동안 '필수품목 거래조건 협의제'라는 대화형 해법을 추진해 왔다. 갑자기 법 개정에 적극 나선 건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맹점주의 권익 보호 명분에도 졸속 입법으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선, 법보다 앞선 불투명한 제도 설계다. 개정안은 가맹점주 단체의 '등록제'와 '협의권'을 법으로 못 박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핵심 운영 기준은 대통령령에 떠넘겼다. 법은 껍데기만 있고 실제 운용은 뒤로 미뤄진 셈이다. 이는 향후 본부와 점주가 충돌할 때마다 규제의 빈틈과 해석의 차이로 혼란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시장교란도 걱정한다. 예컨대 치킨 프랜차이즈 본부가 점주단체의 공급가 인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재료 단가를 낮췄다고 치자. 하지만 그 부담은 다른 메뉴 가격 인상으로 전가될 것이다. 결국 소비자만 더 비싼 치킨을 먹게 된다. 또 인테리어 교체 등 협상이 무산되면 점주단체가 공정위 신고로 맞설 수 있다. 본부는 조사에 대응하다 신제품 출시를 미룰 수 있다. 품질 개선이나 소비자 편익은 뒷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달수수료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 한 가맹본부 관계자는 "점주단체의 요구로 본부가 배달앱 수수료를 떠안게 되면 연구개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단체협의권이 과도하게 작동하면 산업 경쟁력이 고스란히 희생되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공정위는 이미 '필수품목 거래조건 협의제'를 시험 중이다. 그 정착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더 강력한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시장 검증 없는 졸속 입법은 본부·점주·소비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점주 보호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해법이 일방적 협의 강제와 제도화된 갈등이라면 보호가 아니라 시장 파괴다.
협상력의 균형을 조정하기보다 저울추를 한쪽으로 기울이는 입법은 위험하다. 결국 소비자의 지갑과 산업의 성장동력만 정조준할 것이다.
지금 가맹사업에 필요한 건 제도의 '강행'이 아니라 제도의 '정교화'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