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승인이 하루 만에?”···60대 자영업자 노린 6% 대환대출 미끼 [조선피싱실록]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8 05:00

수정 2025.09.28 05:00

사진=생성형 인공지능(AI)
사진=생성형 인공지능(AI)
[파이낸셜뉴스] 서울에 사는 63세 자영업자 A씨는 지난달 초 이쪽저쪽 대출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저축은행 여신영업부의 대리(B씨)라고 했다. B씨는 정부지원 금융상품이 나와 저금리 대환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A씨가 앞서 4월 다른 저축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을 대출받은 게 있다고 하니 수차례 연락을 해왔다.

결국 신청하겠다고 했다.

어제 신청했는데 오늘 승인?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B씨는 곧이어 카카오톡으로 본인 명함 사진을 보내왔다. A씨에겐 신분증, 통장 사본(계좌번호와 거래인감이 날인돼있는 부분) 사진과 최근 6개월 간 건강보험 납부확인서 및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 A씨는 별다른 의심을 못 하고 요청받은 자료 대부분을 카카오톡으로 건넸다.

절차는 참 빠르게도 진행됐다. 바로 다음 날 오전 9시경 B씨로부터 대출이 승인됐다는 결과를 받았다. 메시지에는 △상품명: 정부지원정책자금 대출 △금액: 3000만원 △신규일: 2025년8월XX일(카카오톡 메시지 일자와 동일, 즉 당일 실행) △만기일: 2035년8월XX일(10년 만기 대출) △금리: 6.1%(고정금리) △상환방식: 원리금 균등상환 △매월납부금액: XX만원 △자동이체계좌번호: A씨가 사본 송부한 통장 번호 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명의로 해당 저축은행에 발급된 신용보증서 이미지까지 첨부했다.

“계좌 지급정지 됐습니다”

여기까지 끝나자 그날 오후 또 전화가 울렸다. 지난번 1000만원을 대출받았던 저축은행 채권팀 팀장(C씨)이라고 했다. 대환대출 신청이 계약 위반 및 금융법 위반에 해당해 A씨 계좌가 지급정지 됐다고 했다.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만 계좌 동결을 풀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확인 차 B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카카오톡으로 지급정지 사실통지서를 보내줬다. 대환대출을 유도할 땐 전혀 공지하지 않았던 사실이라 A씨는 당황했다. 하지만 B씨는 “승인은 됐지만 지급정지 탓에 대출 집행이 되지 않고 있으니 우선 자비로 기존 대출 1000만원을 갚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다.

A씨는 결국 겨우 돈을 만들어 C씨에게 연락했고 그가 지정한 계좌로 전액 송금을 했다. 완납증명서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보이스피싱 일당의 설계였기에 당연히 대출은 실행되지 않았고 B씨와 C씨는 연락이 두절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피해자 휴대폰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이 깔리지 않았음에도 피해로 이어진 사례”라며 “보이스피싱에 있어 악성 앱 설치는 필수 사항이 아니며, 어떤 방식으로든 기망을 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금으로 내면 즉시 해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었다. 경기도에 사는 66세 남성 D씨 역시 저축은행 대출 상담사라는 사람으로부터 저금리 대출을 안내 받았다. 이후 신청하니, 카드사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환대출 신청은 계약 위반이고, 금융결제원에 블랙리스트로 등재시켰다고 했다. 리스트 해제를 위해선 카드 대출 2000만원을 상환해야 하고, 대면으로 하면 즉시 해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D씨는 인근 지역 노상에서 해당 팀장 밑에 있다는 직원에게 현금 2000만원을 전달했다. 그는 수거책이었다.

이외 △기존 거래 내역이 없어 대출 승인 시 높은 금리가 적용된다고 속여 지정 계좌로 가능한 많은 금액을 입금시킨 후 편취 △대출 신청 관련 보증료 및 수수료 요구 △이중 대출 예방을 위한 공탁금 예치 유도 같은 유형도 있다. 세부 수법만 다소 다를 뿐 구조는 비슷한 보이스피싱이다.

기존 대출처는 대환대출 사실 알 수 없어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을 알아볼 땐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 협회 대출상품 비교 사이트 등을 확인하고 원하는 상품을 만든 금융사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대환대출 실행 사실을 기존 대출처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A씨 사례에서도 저축은행 간 특정 고객의 대환대출 여부를 알 수는 없기 때문에 B씨에 이어 C씨가 전화 오는 상황 자체가 의심스러운 지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환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금융법 위반, 블랙리스트 등재 등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며 “대환대출을 받은 뒤 기존 대출을 갚지 않으면 약정위반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기존 대출이 아니라 대환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대출이 불필요하다면 개인 신규 대면·비대면 여신 거래를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여신거래 안심차단 서비스’ 신청도 방법이다. 이후 대출이 필요해져 서비스 해제를 하려면 영업점에 방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창구 직원과의 상담을 통해 대출 빙자 보이스피싱을 인지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전화 한통에 금전뿐 아니라 삶까지 빼앗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조선피싱실록]은 금융감독원과 함께 고도화·다양화되고 있는 보이스피싱 등의 수법을 매주 일요일 세세하게 공개합니다.
그들의 방식을 아는 것만으로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 주세요.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