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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장애 겪고도 예산 삭감… 백업 데이터 돌릴 장비 없어[정부 전산망 마비]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8 18:27

수정 2025.09.28 18:27

국가 신경망 안전한가 (1)
2023년 라우터 불량으로 마비
법 개정해 '사회재난' 포함했지만
예산 되레 줄고 복구대책 '미비'
센터간 백업체계 총체적 부실
지난 27일 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소화수조에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소화수조에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하자 당시 강동석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원장은 "대전센터가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재해복구 시스템은 실시간 백업된 자료로 3시간 이내에 복구할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며 정부 시스템은 다르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지난 26일 오후 8시15분 대전 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 말은 무용지물이 됐다. 당시 카카오톡 먹통 사태와 비슷한 무정전전원장치(UPS)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면서 1600개에 이르는 정부 업무시스템이 마비됐다. 정부 업무시스템은 3시간은커녕 30시간이 넘도록 복구가 되지 않았다.

28일 관계기관과 학계 등에 따르면 이번 일로 행정안전부의 국가전산망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정보시스템의 기능 정지에 따른 국민의 피해가 가중되고 관련대책 수립도 지극히 형식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어서다.

2023년 네트워크 장비(라우터) 포트 불량으로 발생한 '행정전산망' 사태 당시 정부는 장애 발생 8일 만에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전산망 마비를 '사회재난' 유형에 포함했다.

당시 나온 대책은 1등급 시스템은 2시간 이내, 2등급은 3시간 이내 복구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재해복구대책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2023년 발생한 행정전산망 사태는 단순한 장비불량이었지만 이번 사태는 '시스템 기능 정지'라는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이라는 점이 다르다. 클라우드 환경의 이원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데이터 손실 우려에 따른 국가전산망의 위기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클라우드 이원화 및 재해복구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센터 간 백업체계의 총체적 부실이다. 제대로 된 전산망 이중 장치가 있었다면, 전산실 1개에 불이 났다고 해서 행정 서비스가 마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행안부 관계자는 "센터 간 백업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데이터를 돌릴 시스템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예산 측면에서 관련 장비 여유분을 갖추기가 빠듯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가 리튬이온배터리와 서버가 같은 층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를 지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UPS 폭발 우려가 제기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터리를 서버와 분리하는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정자원은 정부24, 주민등록시스템, 홈택스 등 주요 국가정보시스템을 대전·광주센터 간 실시간으로 상호 백업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화재 발생으로 뭇매를 맞게 됐다. 국정자원은 대전, 광주 등 주센터와 별도로 원격지에 유사한 재해복구시스템을 구축·가동하도록 설계돼 있으나, 주시스템보다 규모가 축소된 채 운영돼 실제 많은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화재 한 번에 모바일 신분증이 마비되고, 데이터 유실을 우려해 진압조차 늦어지는 현실이 과연 IT 강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광주와 대구 등 다른 센터에 데이터가 백업돼 있지만, 백업과 빠른 복구는 다른 문제"라며 "센터 간 거리가 멀어 데이터베이스 동기화가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도 "대전·대구·광주 3개 센터로 이뤄진 국정자원 가운데 대전·광주는 재해복구 시스템이 일부 구축돼 있으나 최소한의 규모에 불과하고, 스토리지만 있거나 백업만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스템별로 조금씩 다르게 돼 있어 시스템별로 재해복구 시스템을 가동할지 아니면 원시스템을 복구할 건지를 판단해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