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악한 기운 쫓는 '까치 호랑이' 추석때 만나볼까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9 18:07

수정 2025.09.29 18:20

까치는 길한 소식, 호랑이는 전통적 수호의 상징
김홍도 '송하맹호도' 신재현 추정 '호작도'부터
서울올림픽'호돌이'모티브작품까지 총 7점 공개
리움 "케데헌 열풍 아닌 1년전부터 기획한 전시"
19세기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호작도' 일명 '피카소 호랑이'
19세기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호작도' 일명 '피카소 호랑이'
1874년으로 추정되는 신재현 '호작도'
1874년으로 추정되는 신재현 '호작도'
국내 호작도 중 가장 오래된 1592년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임진왜란 호랑이'
국내 호작도 중 가장 오래된 1592년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임진왜란 호랑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까치 호랑이' 리움미술관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까치 호랑이' 리움미술관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전 세계적인 인기로 한국의 전통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 최고 인기 캐릭터는 단연, 케데헌 속 '까치 호랑이'다. 케데헌에서 까치 이름은 '수지'고, 호랑이는 '더피'다. 수지와 더피는 항상 함께 다니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둘은 케데헌에서 갑자기 나타난 캐릭터가 아니다.

까치와 호랑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로 전통미술에 자주 등장했고, 까치와 함께 그려진 호랑이는 조선 후기 민화의 대표적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까치와 호랑이는 단순히 친근한 동물이 아닌, 길조와 수호의 상징이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불러오고, 호랑이는 잡귀를 막아내 집안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한국 관객에겐 '전통문화의 자부심'을, 외국 관객에겐 '한국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더피와 수지를 찾아 떠나는 상설기획전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열린다. 리움미술관은 '까치호랑이 호작(虎鵲)'전을 오는 11월3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까치 호랑이와 관련된 작품 7점이 전시된다. 리움미술관이 소장 중인 1592년 작 '호작도'(虎鵲圖)는 원류로 평가받고 있으며, 국내 전시회에 처음 나온 작품이다. 여우와 이리가 호랑이를 가장해 위세를 부리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출산호'(出山虎), 호랑이가 새끼를 낳자 놀라며 기뻐하는 새를 그린 '경조'(驚鳥),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군자의 모습으로 해석한 '유호'(乳虎) 등이 결합한 작품이다.

화면 우측 상단에 '임진년에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 수 있으며, 민화가 아닌 일반회화 형식으로 그려진 점도 특징이다. 그림 배경의 바위 표현법이나 대나무의 표현법에서는 16~17세기 화풍이 보인다. 리움미술관 측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며 "중국 원나라에서 정립된 호작도의 형식이 한국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인 단원 김홍도(1745~1806, 추정)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도 만날 수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몸을 돌리고 있는 호랑이의 자세는 민화 까치 호랑이의 원형인 '출산호' 도상과 맞닿아 있다. 19세기 접어들어 호작도는 민화로 제작돼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민화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자유로운 표현과 해학적 모습이 더해졌다. 산신이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신탁(神託)을 전달한다는 민속 신앙적 해석부터, 호랑이를 탐관오리로 까치를 민중으로 해석해 사회를 풍자하는 의미까지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더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된 '호작도'(19세기·작자 미상)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추상적인 표현법이 마치 피카소 화풍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피카소 호랑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귀를 세우고 산신이 까치를 시켜 전하는 신탁을 듣고 있는 도상으로,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전형적인 민화풍이다.

1874년 신재현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호작도'도 작가와 제작 시기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다. 화면에는 "호랑이가 으르렁대니 까치 무리가 모여든다"와 같은 호랑이의 위상과 위엄을 보여주는 제발(題跋)이 쓰여 있어 민화이면서도 문인화 성격과 결합한 독특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밖에 19세기에 그려진 '호피장막도'(虎皮帳幕圖)도 독특한 화풍을 드러낸다.
호피 장막 가운데를 걷어 올려 안에 있는 사랑방의 모습을 담았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그림으로 그린 호피도는 호피가 악한 기운을 몰아낸다는 벽사(僻邪)의 의미가 있다.
리움미술관 측은 "책상 가득 책들이 놓여 있고, 펼쳐진 책에는 다산 정약용의 시가 보인다"며 "문인들이 향유한 문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