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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원전 없이 태양광·풍력 '올인'은 자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9 18:21

수정 2025.09.29 18:21

정부, 탈원전 시즌2 군불?
기후에너지환경부 설치 강행
'재생에너지=절대 선'은 망상
세상에 완전한 에너지는 없어
에너지 전환 아닌'믹스'가 답
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논설고문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이 핵심 키워드인 4차 산업혁명기다. AI뿐 아니라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첨단 신기술을 꽃피우려면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수불가결한 시대다. 세계 주요국들이 안정적이면서도 값싼 전력 공급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도 최근 AI 등 신산업 육성 및 '에너지 전환'이 포함된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초장부터 스텝이 꼬이고 있는 느낌이다.

여당의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읽히는 불길한 그림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환경부로 넘겨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만든다니 말이다. 이는 서유럽 선진국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선택이었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3국 모두 기후 중심의 에너지 규제정책을 펴다 전력 도매가격이 폭등하는 쓴맛을 공유했다. 국내 산업계 역시 "탄소감축 문제를 잘못 다루면 전기료가 급등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현 정부는 전력 확보 방식에 관한 한 국내외 이중 잣대를 적용 중이다. 즉 해외로 원전 수출을 추진하면서 국내에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의 군불을 때고 있다. 최근 정부 대표단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 참석해 K원전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한 게 전자의 사례다. 그런가 하면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얼마 전 간담회에서 신규 원전 계획의 원점 재검토를 시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 문재인 정권처럼 대놓고 탈원전을 내세운 적은 없다. 하지만 지난 11일 취임 100일 회견이 변곡점이었다. 즉 "AI를 위한 데이터센터 등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원전을 짓는 데 최소한 15년은 걸리는데 무슨 원전을 짓나"라며 원전엔 부정적 시각을 표출했다. 특히 "풍력·태양광 이건 1~2년이면 된다"며 재생에너지 진흥에 체중을 확 실었다.

그러나 그의 언급은 정확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건설허가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6기 건설기간은 평균 9.7년이다. 대규모 태양광·풍력 단지도 각종 인허가 절차와 전력망 연계까지 감안하면 7~10년 걸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대통령이 원전 건설 기간은 인허가 시간까지 보태 최대한 늘리고, 태양광·풍력은 순수 건설 기간만으로 최소화해 비교한 셈이다. 이는 현 정권이 '환경 탈레반' 세력들의 입김으로 태양광·풍력 등에 '올인'하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현 정부가 '탈원전 시즌2'를 지향한다면 사태는 심각하다. 4차 산업혁명기에 급증하는 전력 수요는 태양광·풍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이들 재생에너지는 원전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데다 치명적 약점이 있다. 즉 밤낮과 날씨에 따라 발전 공백이 생기는 '간헐성'이다. 얼마 전 서해안 주말 나들이에서 이를 실감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몇 시간이나 멈춰 선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보며….

지금 미국은 우리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풍력·태양광 발전은 세기의 사기극"이라며 이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번째 집권 후 다시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한 그다. 탄소 등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건 세계 기후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이를 부인하는 소수설에 기대 풍부한 자국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활용하거나 원전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무조건 백안시하는, 트럼프의 비과학적 자세를 우리가 답습할 필요는 없다. 철학자 칼 포퍼는 어떤 이론이 모든 걸 설명한다는 독단적 주장은 '사이비 과학'이라고 했다. 그의 관점으로는 현 정권이 원전을 사실상 포기하고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간다면 이 또한 비과학적 태도다. 세상에 지고지선인 에너지는 없다. 모든 발전원은 장단점이 있다. 원전은 현재 발전단가가 재생에너지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등이 골칫거리다. 언필칭 친환경 에너지라는 태양광·풍력도 산림 파괴와 환경 훼손 논란을 빚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선'이란 도그마에 빠져선 곤란하다. 문재인 정권 때 밀어붙인 태양광산업은 정부보조금을 빼먹으려는 '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했었다. 국토 면적이 좁은 처지라 해상풍력까지 배제할 순 없다.
다만 중국이 공급망을 틀어쥔 태양광만 쳐다보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 미국과 협력 여지도 큰 K원전을 외면할 까닭도 없다. 결국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믹스'가 답이다.
에너지원별 기술 발전 추이를 살펴보면서 전력 생산방식의 비중을 조정해 나가는 합리적 조합을 짜야 한다.

kb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