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슴슴한 이북식 찜닭… "맛의 전통 이어갈 것" [집(家)이 있다, 업(業)을 잇다]

신지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30 18:20

수정 2025.09.30 18:20

<6> 만포막국수 신의섭씨
10년차 회사원서 식당 3개월차
요리학원 다니며 칼질부터 배워
부모님 지켜온 맛 잇는 게 내 몫
서울 중구 약수동에 위치한 '만포막국수' 이혜자 대표(왼쪽)와 아들 신의섭씨 사진=신지민 기자
서울 중구 약수동에 위치한 '만포막국수' 이혜자 대표(왼쪽)와 아들 신의섭씨 사진=신지민 기자
서울 중구 약수역 1번 출구를 나서면 30초 만에 닿는 골목. 이곳은 이북 실향민들의 삶이 뿌리내리며 형성된 맛집 거리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젊음의 허기를 달랬다면, 약수동은 북녘 향수를 품은 찜닭과 막국수가 세월을 지탱해 왔다. 그 한가운데, 1978년 문을 연 '만포막국수'가 있다.

"처음은 저희 아버지 삼촌이 허름한 한옥집에서 시작하시다가 부모님이 이어받아 20년을 해오셨고, 이제는 제가 배우는 중입니다."

올해 마흔이 된 신의섭씨(40)는 부모 신영민(75)·이혜자(68) 대표 곁에 서서 가업을 잇고 있다.

회사를 10년 가량 다니던 그는 1~2년의 고민 끝에 지난 3개월 전부터 가게에 발을 들였다.

만포막국수란 이름은 압록강 근처 '만포'에서 따왔다. 이북을 직접 가볼 순 없지만, 가게 간판은 북녘의 지명을 따 반세기를 이어왔다. 약수동 일대에는 평양냉면집, 족발집 등 이북 실향민의 음식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다. 최근엔 카페와 신흥 맛집들이 들어서며 젊은 세대가 대거 유입됐고, 만포막국수도 그 중심에 서 있다.

그가 승계를 결심한 것은 단순 생계 때문이 아니었다. 신씨는 "예전엔 백숙 같은 슴슴한 찜닭 맛을 어르신들이 주로 찾으셨다. 그런데 요즘은 20~40대 손님이 70~80%"라며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담백한 이북식 찜닭을 좋아하는 걸 보고, '이 맛을 내가 잇지 않으면 여기서 끊기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만포막국수의 찜닭 후기엔 "깔끔하고 담백하다", "쪽파 얹은 맛이 중독적"이란 표현이 줄을 잇는다. 손님들이 '쪽파 추가는 필수'라며 권하는 것도, 이 집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만포막국수는 단골들의 기억 속에도 각인돼 있다. 신씨는 "어떤 분은 한국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들른다"며 "손님이 만두 200개를 주문해 해외로 가져가겠다며 직접 배달을 부탁한 적도 있다"고 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웃이 "그때 그 맛 그대로네"라며 미소를 지을 땐, 온 가족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승계는 결코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직장인 시절과 달리 주말도 없이 매일 나와야 하고, 손님이 몰리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또 누군가 '예전보다 맛이 없다'고 하시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래도 개선하란 뜻으로 받아들이고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늘 강조하는 건 단순하다. 음식은 무조건 맛있고 깨끗해야 하며,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씨는 아직 요리 학원에서 칼질을 배우며 주방 입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양파 써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며 "부모님이 지켜온 맛을 함부로 바꾸기보단, 전통을 지키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대기 손님들이 덜 불편하게 시스템을 개선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신 씨는 "한여름 땡볕에 줄 서 계시는 걸 보면 늘 죄송하다"며 "테이블 오더까진 아니더라도 웨이팅 시스템 등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jimnn@fnnews.com 신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