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SNS 중심으로 '혐중 정서' 괴담 확산
[파이낸셜뉴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40대 직장맘 A씨는 지난 9월 30일 딸에게 뜻밖의 말을 들은 뒤 아연실색했다.
A씨에게 엄청난 비밀을 말하듯 꺼낸 딸의 말은 "엄마, 엄마. 중국 사람들 무비자로 들어와서 장기 꺼내 간 데"였다. A씨가 "무슨 말이야. 아니야"라고 대응했지만, 소용없었다.
A씨는 "딸과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뉴스처럼 SNS 글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완전히 믿고 있었다.
A씨의 딸이 봤다는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장기매매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괴담은 지난 9월 29일부터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가운데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 같은 내용은 SNS로 소통하는 10대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다.
'혐중' 넘어 '공중증'
이어 "이상한 중국 사람이 쫓아오면 신고해. 누가 태워다 준다해도 거절하고. 난 너희들이 너무 걱정돼"라며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졌는데, 중국 사람들이 그걸로 한국에 와서 성인, 아이들, 남녀 상관없이 납치해서 장기매매를, 심지어 살아있는 채로 배를 갈라서 장기를 꺼낸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캡처된 사진 속엔 또 "대한민국 지금 큰일났다. 진짜 중국에선 장기매매가 엄청 일어나서 중국 무비자를 막아야 한다. 한국이 위험하다"면서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재검토'를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에 동의를 눌러 달라고 촉구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 대통령 때문'이라는 전제로 중국인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사건도 많이 생겼다며 최근 해수욕장에 시신이 발견된 뉴스나 인천대교에서 차량만 남긴 채 사라진 운전자가 87명째라는 내용이다.
앞서 A씨의 딸처럼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 같은 글들이 공유되면서 공포심이 확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꼬리를 무는 소문들
소문이 소문으로 그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 보도된 기사의 내용을 근거로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9월 29일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첫날 크루즈 드림호가 인천항에 내려준 단체 관광객 인원 중 일부가 여행사가 계획한 당초 일정과 달리 출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기사다. 법무부와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텐징으로 출발하는 크루즈 드림호에 탑승한 출항 인원은 2183명이다. 같은 날 오전 인천항 크루즈터미널에 입항한 승객 2189명 중 6명은 현재 출국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이후 "공항에서 20명이 사라졌다고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도주했다" 등의 내용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지난 5월 제주경찰청이 특별치안대책 시행 50일간의 성과를 보고한 내용도 거론됐다. 검거된 외국인 범죄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인 75명에서 53.3% 늘어난 115명이 검거됐으며 중국인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우려를 표명했다.
'묻지마 단체 살인'에 대한 소문도 퍼지고 있다.
X에는 "정부는 간첩이 점령,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 없음, 국가정보 마비, 총알 총기 밀매에 언론은 거짓 보도로 국민 조롱"이라고 열거한 뒤 "국민들 사이 간첩인 중국인 섞여 있다. 빠르면 오늘 밤, 늦어도 10월 3일 전에 시작될 걸로 보인다"는 글이 올라왔다.
'중국인 무비자 관광객'을 거론하며 칼부림을 예고한 글이 SNS에 올라와 경찰이 추적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관련 신고를 지난 9월 30일 접수해 게시글 작성자의 IP 등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게시글에는 '중국인 무비자 관광객이 내일(1일) 아침 7시 모든 학교 앞에서 칼부림함'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글을 두고 '무비자로 들어온 중국인이 학교 앞에서 테러를 한다'거나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칼부림을 예고한 것'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나왔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은 최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던 반중 집회에 불을 지폈다.
하루 전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집회'에서는 100여 명이 모여 '반중멸공' 구호를 외치며 무비자 입국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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