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국정자원 재난, 반복하지 않으려면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1 18:11

수정 2025.10.01 21:24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지난달 26일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대국민 서비스 647개가 지난 주말 일제히 멈춰섰다. 모바일 신분증 발급, 우체국 택배·금융서비스, 정부24, 국민신문고 등 각종 온라인 행정·민원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 중 10% 이상이 복구됐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최소 1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화재는 서버실에서 발생했다. 무정전전원장치(UPS) 옆에 뒀던 리튬이온 배터리가 화근이다.

국정자원이 배터리 전원을 차단하고 이전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국가 재해복구시스템은 물리적 파괴가 일어나도 대국민시설과 자원을 보호하고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불길을 잡지 못해 시스템 96개가 전소됐지만 마비된 대국민 서비스는 살아나지 못했다. 정부는 이중화 백업을 해놨지만 재난 발생 후 즉시 기능을 넘겨받아 가동할 수 있는 이원화 시스템은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그 결과 6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비스를 완전 복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를 인재(人災)로 판단한다. 예측 불가능한 돌발상황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재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UPS와 배터리를 서버와 같은 공간에 둔 것이 일차적 잘못이다. UPS는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서버가 갑자기 꺼지는 것을 막아주는 필수 안전장치다. 고용량 리튬이온 배터리가 완충상태로 대기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겪은 경험으로 인해 배터리 화재진압이 얼마나 어려운지까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서버 옆에 UPS와 배터리까지 함께 두는 것은 알면서도 불씨를 상시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

이원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원화 시스템이란 메인 서버가 장애를 일으켰을 때 다른 시스템이 즉시 업무를 이어받아 가동되도록 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미 대형 금융사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원화를 넘어 삼원화, 즉 세 겹의 방어막을 갖춘다. 그러나 국정자원은 사실상 단일 지점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비상 상황에서 기능을 대신할 백업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한곳의 화재가 국가 전체의 데이터 행정을 마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가 이원화를 모를 정도로 어수룩하지는 않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원화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배경에는 공주 데이터센터의 비극이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8년부터 추진했던 공주 데이터센터는 이런 화재를 대비해 즉각 가동할 수 있도록 구상한 쌍둥이 데이터센터다. 그런데 공주 데이터센터 추진 과정에도 여러 가지 불운이 발생했다. 정부가 턴키 방식으로 입찰한 탓에 입찰에 참여하려던 건설사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그 결과 7번 유찰이 되고 2년이 흐른 끝에 정부가 발주 방식을 바꿨다. 공주 데이터센터가 완공된 시점은 지난 2023년이다. 지금쯤 원활히 가동되고 있어야 할 공주 데이터센터는 여전히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제때 예산이 배정되지 못한 탓에 지어놓고도 가동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번 사태와 판박이로 불렸던 3년 전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는 이번 국가전산망 장애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도 정부는 카카오 측에 이원화 등의 후속조치를 요구했지만, 막상 가장 규모가 큰 국가 전산망에는 이러한 룰을 냉정하게 적용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전산망 장애를 계기로 국가 디지털 인프라 개혁의 지휘권을 국가AI전략위원회에 넘겼다. 국가 전산망 관리뿐 아니라 지난 27년간의 전자정부 체계를 확 바꿔 'AI 정부'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당장 급한 건 원활하고 안정적인 전산망 이원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정부가 명심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공주 데이터센터의 비극을 없애고, 현실적인 재해복구 대응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