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MZ 여성들 "추석날 '시월드' 싫어서 결혼 망설여져요"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6 09:00

수정 2025.10.06 09:00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자체 제작한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자체 제작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결혼 생활은 개인끼리 만나 가정을 이뤄 잘 살면 되는데, 왜 시댁에 잘해야 하고 명절을 챙겨야 하는 거죠?"

서울에 사는 정모씨(32)는 1년 전, 남편과 결혼했지만 최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시댁을 가냐, 마냐 하는 실랑이로 신혼인데도 파경을 맞게 된 것이다.

정씨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댁과 함께 하는 명절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시누이의 오만 참견을 듣느니, 차라리 집에서 남편하고만 명절을 쇠는 게 낫다는 항변이다.

남편도 처가에 가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그는 "억지로 명절 시댁에 끌고 가려는 남편과 계속 싸우다 보니 이혼에 이르게 됐다"며 "양가 교류는 결혼 당사자가 싫으면 안 하는 게 이 시대의 트렌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이나 설을 반기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부부 갈등을 넘어, 이혼이 빈번해지거나 명절 증후군에 대한 혐오로 결혼을 안 하는 MZ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점차 시대가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다 함께 보내는 명절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MZ세대는 입을 모은다. 조상 숭배와 풍요 기원, 공동체 화합 등 다양한 목적에서 시작된 명절이 개인주의 시대와 맞물려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간 명절을 두고, 공휴일만 지정하고 왕래하는 문화를 없애자는 폐지론이 대두돼왔다. 일례로 추석과 설의 명절명을 없애고 다른 공휴일명을 만들자는 얘기도 나온다. 매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시대에 맞게 명절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어왔다.

명절날 친척이나 양가가 모이면 시어머니 잔소리와 명절 일거리로 인한 명절 증후군, 취업·결혼 훈수 등으로 인해 갈등이 조장됐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명절 기간 가정폭력 등과 같은 신고 건수가 평상시 대비 40%가량 높고, 명절 기간 부부 간 갈등에 따른 명절 후 이혼율 또한 평균 대비 1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이혼한 김모씨(35)는 "전처가 명절을 비롯해 아예 시댁을 가지 않아 설득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시댁을 가기 싫다는 이유로 이혼 통보를 했었다"며 "우리 엄마가 전을 부치라거나 설거지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시댁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자는 게 말이 되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시누이와의 갈등으로 이혼한 이모씨(30)도 "명절 시댁에 가면, 시누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거나 되지도 않는 훈수를 둔다"며 "그 스트레스로 남편에게 하소연했지만, 시누이와 잘 지내라는 말만 돌아와서 남편과 갈라섰다"고 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자체 제작한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자체 제작한 이미지.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편이 처가에서 눈치를 보고, 명절 일을 전담하는 '처월드'도 생겨 남자가 되레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1년 전 이혼한 박모씨(34)는 "처가에서 전을 수십장 부치는 등 명절 일거리를 최선을 다해 거들었지만 '전도 하나 못 부치냐'는 장모의 핀잔만 돌아왔다"며 "힘든 회사일에 집안일까지 도맡는 독박 결혼생활에 명절 증후군까지 겹쳐 결혼생활을 접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배우자 집안까지 챙겨야 하는 시월드·처월드로 일컬어지는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와 '독박 육아' 등이 부담으로 작용해 '비혼주의'를 선언한 이들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3000여명의 비혼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 이상이 △집안의 이해 관계 △독박 육아 △높은 결혼 비용 등 이유로 결혼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속된 말로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외로워도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비혼주의자인 20대 여성 송모씨는 "주변 기성세대를 보면 양가 갈등으로 이혼하는 경우를 쉽게 봤다"며 "개인끼리 알콩달콩 결혼생활을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양가 부모를 챙기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상한 결혼 문화"라고 지적했다.

김형도 사회문제연구소 소장은 "명절에 시댁이나 처가에 가야 하는 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에 맞지 않는 문화"라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서구의 결혼 문화처럼 부모는 간섭하지 않고, 자녀가 알아서 사는 결혼생활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비혼을 비롯해 저출산, 이혼,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750만명에 육박한 실정이다. 3가구 당 1가구 꼴인 셈이다.
합계 출산율은 '0.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국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