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 광장] 윤동주의 삶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8 18:35

수정 2025.10.08 18:57

윤동주 시인 27년4개월 짧은 생애
서거 80주년 맞아 국내외 추모열기
교토여행 그의 흔적 톺아보기 인기
그가 머물렀던 윤동주기념관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염원한 시인의 숨결이 남아있어
조성관 작가‘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조성관 작가‘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연세대에 있는 윤동주기념관 조성관 대표 제공
연세대에 있는 윤동주기념관 조성관 대표 제공
일본 교토(京都). 2022년을 기점으로 한국인의 교토 여행패턴이 확실히 바뀌는 것 같다. 그 전까지 교토 여행은 천년고도(千年古都)라는 별칭에 충실한 여정이었다. 여행자들은 료안지, 긴카쿠지, 헤이안신궁 등으로 코스를 짰다.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80년 전 그랬던 것처럼.

2022년부터 여기에 한 가지 일정이 추가되었다. 윤동주 흔적 톺아보기다.

이들은 윤동주가 다닌 도시샤대학 교정과 시비를 둘러보고, 그가 1943년 초여름 친구들과 놀러가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은 우지강(江) 구름다리, 일본 경찰에 체포된 도시샤대학 옛 기숙사 등을 찾아간다.

흔적 톺아보기의 하이라이트는 도시샤대학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 그 옆에는 그가 흠모한 도시샤대학 영문과 선배 정지용 시비가 있다. 그가 도쿄의 릿쿄대학 영문과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고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정지용 시인의 영향이다.

이런 여행은 그 전까지는 문인과 문학 애호가들에게 국한되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일반 여행자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윤동주 80주기인 올해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 2월 16일 도시샤대학은 시인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시인의 조카가 대신 받은 이 행사가 미디어를 타면서 도시샤대학과 윤동주의 관계가 다시 조명을 받았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명동촌에서 생을 받은 윤동주는 27년4개월의 생애를 살았다. 그가 만주땅에서 보낸 시간은 20년. 경성의 연희전문 4년, 일본 도쿄와 교토 3년여.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거나 애송되는 시들의 상당수가 연전 시절 태어났다. '새로운 길' '자화상' '참회록' '서시' '별헤는 밤' 등이 1938년에서 1942년 사이에 세상 빛을 봤다.

'윤동주 평전'의 저자 송우혜의 말을 빌리면, 시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가 연전 4년이었다. 1학년이던 1938년 중국 대륙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어서 일제의 압제가 거셌지만 연전은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한국어 강의가 자유롭게 이뤄졌고, 교수들은 자유와 진리의 기독교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언더우드관을 위시한 주요 건물에 태극마크를 새겨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연전이 이런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린 것은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였기 때문이다.

만주와 서울과 일본에서 시인의 체취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명동촌 생가(生家)? 도시샤대학?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연전 시절의 기숙사를 강력 추천한다. 시인은 1·3학년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1학년 때 '새로운 길'을 썼고, 3학년 때 후배 정병욱을 만났다.

옛 기숙사는 현재 연세대에서 윤동주기념관으로 운영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은 도기다시 바닥에서 계단과 도머(domer)창까지 모든 게 1922년 그대로다.

정병욱이 없었으면 윤동주는 시인이되 시인이 아니었다.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필사 시집 세권을 만들어 한권을 정병욱에게 선물했다. 정병욱은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생환한다. 1946년 정병욱은 만주에서 내려온 동주의 동생 일주를 만났고, 그에게 형의 자필 시집을 전해준다. 윤동주가 시인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은 여러 사람이 곡을 붙였다.
록 버전도 있고, 동요도 있다. 시인의 삶에 가장 부합하는 곡은 유지연 작곡에 임백천이 부른 '새로운 길'이다.


동주가 푸르른 1학년을 보냈던 기숙사 3층에서 임백천이 부른 '새로운 길'을 들어보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를 염원한 시인의 삶이 가슴을 파고든다.

■약력 △연세대 영문과 △작가, 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국제지니어스연구소장 △전 주간조선 편집장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