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합곡과 삼음교는 임신 중 금침혈이자 최생혈이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8 06:00

수정 2025.10.18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의원들은 산모들에게 함부로 침을 놓지 않았다. 특히 합곡과 삼음교는 유산의 우려가 있어서 금침혈(禁針穴)이었다. 그런데 이들 혈자리는 출산에 임박해서는 최생혈(崔生穴)로도 활용되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의원들은 산모들에게 함부로 침을 놓지 않았다. 특히 합곡과 삼음교는 유산의 우려가 있어서 금침혈(禁針穴)이었다. 그런데 이들 혈자리는 출산에 임박해서는 최생혈(崔生穴)로도 활용되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부인과 질환을 많이 치료한 한 명의가 있었다. 명의는 가임기 여성들의 부인과 질환뿐만 아니라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경우에도 많은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임신을 한 어느 부인이 몸이 안 좋다고 하면서 약방을 찾았다. 의원은 진찰을 해 보더니 “요즘 약간 어지럽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요. 지금부터 분만하는 달까지는 일을 줄이고 많이 자는 대신 수시로 걷도록 하시오.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장부가 막히고, 관절이 원활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태아만 커지고 난산에 이르게 되니 조심하시오.”라고 하면서 신신당부했다.



이어서 말하기를 “그리고 음식은 찰지고 단단하여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은 피하고,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오. 임신 중에는 탕약도 함부로 복용하면 안 되오.”라고 했다.

의원은 산모가 부득이하게 탕약 복용이 필요할 때는 태동불안이 심하거나 유산의 기미가 보이는 경우가 아니면 처방을 자제했다. 임신 중에 태아나 산모에게 안전한 약재도 많지만, 반대로 임신 중에 복용하면 안 되는 약재도 있다. 이것을 ‘임신 금기약’이라고 한다.

한 산모가 체기가 있어서 약방을 방문했다. “의원님, 두 달째 월사(月事)가 없습니다. 필시 임신을 한 것 같은데, 입덧과 함께 체기가 심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진맥을 해 보더니 임신맥인 것을 확인하고서는 간단하게 팔뚝의 내관혈과 발등의 함곡혈에 가볍게 침을 놓았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입덧이 심하면 내관혈을 지압해 주면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산모가 약방문을 나서자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왜 소체환을 주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자, 의원은 “잉부(孕婦)에게 소도지제(消導之劑)를 쓰면 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임신 초기에는 간단한 소화제도 안 된다.”라고 했다.

그러자 제자는 “그렇다면 침은 왜 그렇게 설렁설렁 놓으신 겁니까?”라고 하자, 의원은 “임신 초기에 침으로 강자극을 주면 자궁이 수축해서 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체기에 합곡이 효과가 좋지만, 잉부에게는 합곡과 발목의 삼음교, 복부의 석문혈은 금침혈이다. 그래서 입덧에 좋은 내관혈과 복통과 소화불량에 효과적인 함곡혈을 가볍게 자극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은 제자에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의술에 밝았던 송태자(宋太子)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신분이 높고 의술은 뛰어났지만 성정이 급했다. 어느 날 송태자가 산달을 다 채운 어느 산모를 진맥해 보고서는 “이 산모의 뱃속에는 여아 1명이 있구나.”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서문백(徐文伯)이란 의원이 진맥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산모는 여아와 남아 각각 1명을 임신한 것입니다.’라고 달리 진단했다. 서문백의 말을 들은 송태자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더니 산모의 배를 갈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자 서문백이 “제가 침으로 확인해 해보겠습니다.”라고 청했다. 서문백은 침통에서 침을 꺼내 산모의 삼음교혈을 사하고 합곡혈을 보하니 바로 낙태가 되었다. 낙태가 된 태아를 확인하니 정말 서문백의 말과 같이 여아와 남아 두명의 쌍태아였다.」

이야기를 마친 의원은 “그래서 임신했을 때는 임신 초기에 합곡과 삼음교를 자침하면 안 된다. 실제로 <침구대성>에는 ‘잉부에게는 합곡에 침을 놓지 말고, 삼음교도 마찬가지다. 석문에 침이나 뜸을 하면 여인은 평생 임신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라고 했다. 제자는 옛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지만 스승의 말이니 귀담아들었다.

그때 갑자기 어느 사내가 허겁지겁 약방에 왔다. 그 사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찬 목소리로 “의원님, 의원님, 제 마누라 좀 살려 주십시오. 헉헉~~ 지금 산통 중인데, 산통을 벌써 한나절 이상하면서 마누라가 기진맥진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산파가 힘쓰고 있지만 도무지 나올 기미가 없으니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헉헉~”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서둘러 침통을 챙겨서 사내를 따라나섰다. 사내의 집에 도착해서 방안에 들어서 보니, 늙은 산파가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고, 부인은 거의 탈진에 빠져 소리 지를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산모는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아마도 탈진에 탈수 증상까지 있는 듯했다. 의원은 산파에게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행동하시오.”라고 하면서 옆에서 돌보는 여인들에게 서둘러서 미음을 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어수선하게 방 안에서 서성이는 남편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게 했다.

의원이 산모에게 아픈 곳을 확인하자 복통만을 호소하고 허리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배가 비록 아프더라도 허리가 심하게 아프지 않은 경우에는 분만이 시작되지 않는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 도와주던 두 명의 부인에게 부축해서 방안을 걷게 해서 고통을 견디도록 했다. 만약 걸을 수 없으면 장롱에 기대고 섰다가 걸을 수 있으면 다시 걷도록 했다. 그렇게 10여바퀴를 돌았더니 드디어 양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산모는 “배와 허리가 많이 아프고 눈앞이 번쩍이며 불이 이는 듯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태(胎)가 신경(腎經)에서 분리되어 아기가 산문(産門)에 도달한 것이다.

의원은 산파에게 자리를 잡게 하고서는 약방에서 챙겨온 최생음(催生飮, 분만촉진약)을 조심스럽게 복용시켰다. 산모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미음을 식혀서 산모에게 조금씩 먹였다. 산모가 무력하고 피곤하여 기운이 빠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배가 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면 또한 억지로 먹이지 않도록 했다. 잠시 후 산모가 약간 기운을 차린 듯했다.

의원은 침을 꺼내어 산모의 명치에 있는 거궐혈과 삼음교혈을 사하고 합곡혈을 보했다. 이어서 산모의 오른쪽 새끼발가락 끝에 있는 지음혈에 뜸을 3장 떴다. 그러자 산모의 산도가 조금씩 열리더니 태아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파는 이제야 안심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태아를 받았다. 의원의 침술 덕분에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약방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제자가 의원에게 “스승님 덕분에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산모에게 합곡과 삼음교를 놓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찌 그 혈자리에 침을 놓으신 겁니까?”하고 물었다.

의원은 껄껄 웃으며 “옛말에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고 했다. 잉부에게 합곡과 삼음교가 유산을 시킨다는 것은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대로 출산이 임박해서는 합곡과 삼음교를 놓으면 자궁수축 작용으로 인해서 출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의원의 말처럼 합곡과 삼음교는 임신부에게 금침혈(禁針穴)이면서 산달에 이르러서는 순산을 위한 최생혈(崔生穴)로 활용되었다.

옛날에도 여성들은 대부분 산파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산을 했지만, 난산의 경우에는 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부인대전양방> 産寶方云 : 妊娠欲産, 腹雖痛而腰不甚痛者, 未産也, 且令扶行熟忍. 如行不得則憑物扶立, 行得又行. 或衣漿先下, 然後作陣腰腹痛, 眼中如火生, 此是胎離腎經, 兒逼産門也. 卽服催生藥一二服, 卽扶上蓐草, 切不可坐草早. 務要産婦用力, 存養調停, 亦令坐婆先說諭之. 如覺心中煩悶, 可取白蜜一匙, 用新汲水調下. 或覺饑, 卽喫軟飯或粥少許亦須預備, 勿令饑渴, 恐産婦無力困乏也. 若不饑渴, 亦不須强食. 大凡生産自有時候, 不可强服催生, 滑胎等藥. 或因坐草早, 勢不獲已則服之. 若無事强服, 恐變生他疾, 又須戒之. (경효산보에서는 "임신한 사람이 분만하려고 할 때 배가 비록 아프더라도 허리가 심하게 아프지 않는 경우에는 분만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부축하고 걷게 하여 고통을 견디도록 한다. 만약 걸을 수 없으면 지탱할 물건에 기대고 섰다가 걸을 수 있으면 다시 걷도록 한다. 만약 양수가 먼저 나오고 그러한 후에 진통으로 허리와 배가 아프며 눈 속에서 불이 나는 것과 같으면, 이것은 태가 신 경락에서 분리되어 아기가 산문에 도달한 것이다. 즉시 분만촉진약을 한 두 번 복용하고 분만할 곳에 부축하여 앉힌다. 그렇지만 결코 분만할 자리에 서둘러 앉아서는 안된다. 산모가 힘을 쓸 때 조화롭게 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도록 한다. 또한 산파가 먼저 말하여 인도하도록 한다. 만약 가슴이 괴롭고 답답하게 느껴지면 꿀 한 숟가락을 새로 길어온 물에 타서 먹는다. 만약 배가 고프게 느껴지면 진밥이나 죽을 조금 먹이는데, 역시 미리 준비하도록 하여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지 않도록 한다. 산모가 무력하고 피곤하여 기운이 빠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배가 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면 또한 억지로 먹이지 않도록 한다. 대체로 분만하는 것은 자연스런 때가 있으므로 억지로 분만을 촉진하거나 분만을 용이하게 하는 약을 복용하게 할 수 없다. 혹 너무 일찍 분만을 시도하여 분만하는 상황이 전개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복용한다. 만약 이유 없이 억지로 복용하면 변하여 다른 병이 생길까 두려우므로 이 또한 반드시 경계한다." 라고 하였다.)

<동의보감> ○ 昔, 有宋太子善醫術, 逢一孕婦, 診曰, 是一女. 徐文伯診曰, 此一男一女也. 太子性急, 欲剖視之, 文伯曰, 臣請鍼之, 瀉足三陰交, 補手合谷, 應鍼而落, 果如文伯之言. 故姙娠不可刺. (옛날 송태자는 의술에 밝았다. 임신부 한 명을 보고 여자아이 1명을 임신했다고 진단하였다. 그런데 서문백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각각 1명을 임신했다고 진단하였다. 태자는 성질이 급하여 배를 갈라 확인하려 하였는데, 문백이 침으로 해보겠다고 청한 후에 삼음교를 사하고 합곡을 보하니 침에 응하여 낙태가 되었다. 확인하니 정말 문백의 말과 같았다. 그래서 임신했을 때는 자침하면 안 된다.)

○ 催生難産, 及下死胎, 取大衝補ㆍ合谷補ㆍ三陰交瀉, 立時分解. (난산에 아이를 빨리 나오게 하고 싶거나, 사태를 내보내려 할 때는 태충보ㆍ합곡보ㆍ삼음교사를 쓰면 바로 나온다.)

<침구대성> 孕婦不宜針合谷,三陰交內亦通論,石門針灸應須忌,女子終身孕不成. (임부에게는 합곡에 침을 놓지 말고, 삼음교도 마찬가지다. 석문에 침이나 뜸을 하면 여인은 평생 임신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

<실험단방> 若胎逼氣絶, 則針巨關穴, 三陰交穴, 以瀉法針之, 合谷以補法針之. (태가 압박하여 기절한 경우에는 거궐혈과 삼음교혈에 사법으로 침을 놓고 합곡혈에 보법으로 침을 놓는다.)

<언해구급방> 產母右足小指尖頭上灸三壯卽產. 又鍼合谷ㆍ三陰交穴, 妙. (산모의 오른쪽 새끼발가락 끝에 뜸을 3장 뜨면 즉시 아이를 낳는다.
또 합곡과 삼음교에 침을 놓으면 좋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