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은 입법보다 방송 스케줄을 먼저 챙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정청래 대표는 이틀 뒤 가장 먼저 김어준씨의 유튜브를 찾았다.
국민의힘에서도 전한길씨 등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독자 50만명이면 국민의힘 책임당원 절반을 움직인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유튜브는 정치의 입구이자 출구가 됐다.
문제는 정치가 유튜브 친화적 언어로만 작동된다는 점이다. 짧고 자극적인 숏폼(Short form) 콘텐츠가 중심이 되면서 정치언어는 점점 단순해지고, 대화는 사라졌다. 정제된 논리보다 선명한 구호가, 합리적 토론보다 분노의 표정이 더 큰 호응을 얻는다.
또한 유튜브는 단순 홍보가 아닌 정치적 생명선이 됐다. 구독자 수는 곧 정치적 체급을 상징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채널은 177만명, 정청래 대표는 70만명, 김병주 최고위원은 50만명이 넘는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민주당 박주민 의원,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도 모두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소위 정치 유튜버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론 자기 지지자들과의 내부 소통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영상의 대부분은 논쟁보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이 댓글로 달려도 삭제되거나 무시된다. 유튜브 소통은 결국 '나를 지지하는 사람과의 대화'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는 정치의 확증편향성만 강화할 뿐이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정치적 새장에 국민을 가둬버린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여기에 숏폼 영상은 더욱 강한 메시지 경쟁을 부추긴다. '팩트로 제압한 ○○○ 의원' 같은 자극적 문구는 논쟁의 맥락을 지운다. 이는 실체를 왜곡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치가 미디어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유튜브 정치가 다른 점은, 그 영향력이 실시간으로 공천과 입법에까지 미친다는 점이다. 정치의 중심이 국민이 아닌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유튜브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소통창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은 '소통'이 아니라 '확성'에 가깝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내 편을 결집시키기 위한 확성기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진정한 소통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탈무드의 격언 중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튜브를 통한 '일방향 대화'가 아닌,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유튜브 조회수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인은 콘텐츠 제작자가 아니라 공공의 대표다. 몇 초짜리의 숏폼이 아니라, 10년짜리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여의도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길들여지는 동안 국민은 점점 피로해진다.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구독자 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 수다. '좋아요'를 누르는 손가락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귀가 더 절실하다. 여의도가 다시 '유튜브 공화국'이 아닌 '소통의 공화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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