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태 뒤엔 '中복건갱' 네트워크...韓당국 비웃듯 범죄조직은 "태국, 필리핀으로 오세요"
캄보디아 사태가 공론화된 이후에도 중국 범죄조직 '복건갱'의 구인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는 20일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올라온 '해외 텔레마케터(TM) 모집공고'를 보고 무작위로 3곳을 선정, 연락을 취한 결과 이들은 고소득을 보장하며 "보이스피싱 업무"라고 스스로 밝혔다. 이들 조직은 "감금이나 고문·구타는 일체 없다"면서 "여자친구나 가족들과도 같이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겠다"라며 기자를 유혹했다.
근무지는 태국(방콕)·베트남(호찌민)·필리핀(마닐라)으로, "캄보디아로 추후 이동할 수 있는데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사태의 여파가 주변국으로 퍼지는 등 풍선 효과가 강해지면서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 중국 푸젠(복건)성 출신의 범죄조직 세력인 '복건갱'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외교부 외에도 경찰청,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이 포함된 영사안전 기구를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부교수는 이번 캄보디아 사태를 두고 "초국경 조직범죄가 한 국가의 부패와 제도적 취약성을 숙주 삼아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번 사건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푸젠(복건)성 출신 범죄조직인 '복건갱(Fujian Gang)’에 대해 "복건갱은 전통 삼합회처럼 위계 질서가 강압적이지 않다"며 "이익을 매개로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형 조직이라 한 지점이 무너져도 다른 곳에서 즉시 재편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건갱의 활동 양상을 "첨단 기술과 인신매매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노동착취 산업"이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이들은 다국어가 가능한 청년층을 고임금 정보기술(IT)직으로 속여 모집한 뒤 여권을 압수하고, 온라인 사기나 도박 사이트 운영에 강제 투입한다"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이고, 인간이 범죄의 도구로 전락하는 구조도 주요 특징"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피그 부처링(Pig Butchering)'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한다. 피그 부처링은 사기꾼이 온라인에서 피해자와 신뢰 관계(주로 로맨스)를 형성한 뒤, 가짜 투자 플랫폼으로 유인하여 자산을 모두 가로채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범죄 수익금의 이동과 세탁에는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 특히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가 핵심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악랄한 범행수법에도 이들이 사법적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데에는 캄보디아 현지 정치권과의 끈끈한 관계가 작용했을 것으로 김 교수는 보고 있다. 그는 "복건갱 네트워크는 합법적인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해 현지 정치 및 경제 엘리트에게 체계적으로 접근한다고 알려졌다"면서 "이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이나 기부 행위를 통해 환심을 사고, 이를 발판으로 현지 권력 구조 깊숙이 침투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들 복건갱 조직이 캄보디아에서는 최소 50만달러 이상을 정부에 기부하면 얻을 수 있는 '오크냐(Oknha)'라는 귀족 칭호를 활용한다"면서 "범죄 조직과 연계된 인물들이 이 칭호를 획득하여 집권당 및 총리 가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사업적 특혜를 누린다고 알려졌다"고 분석했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는 천즈 태자(프린스)그룹 회장도 부동산 개발·투자 등 합법적인 사업을 앞세워 캄보디아에 정착, '오크냐' 직위를 얻었다. 이후 정치권과의 유대를 토대로 프놈펜 3대 웬치(범죄조직) 중 하나인 태자단지를 운영하는 등 대규모 스캠범죄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부 통제력이 약한 국가와 강한 범죄 네트워크의 공생'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캄보디아는 정부 통제력이 약하고 부패가 상층부까지 스며든 전형적인 구조"라면서 "법은 느리고 부패는 빨라, 그 간극 속에서 범죄는 산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복건갱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일 조직을 추적하는 일이 아니라, 동남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범죄 생태계를 읽는 일"이라며 "국제 공조와 거버넌스 개혁 없이는 이들은 언제든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재외동포영사대사와 주필리핀 대사를 역임한 한동만 전 대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영사 인력 확충과 범 부처 기구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 전 대사는 "해외에서 사건·사고가 폭증하고 있지만 외교부 영사안전국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 인력을 포함해 '재외국민안전대책본부'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필리핀 대사 시절 '코리안데스크'를 운용한 경험이 있는 한 전 대사는 "코리안데스크는 대사관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사건 초기 대응이 훨씬 빨랐다"며 "캄보디아에도 이 제도를 도입해 인신매매·취업사기·사이버사기 대응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대사관의 소극적 대응이 비판받는 데 대해서는 "재외공관 직원들은 헌법이 부여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일은 '근무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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