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헬조선, 20대 캄보디아로 내몰았다?"..세대 갈라치기 말라는 '따끔한 경고' [쓸만한 이슈]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2 06:00

수정 2025.10.22 06:00

국힘 "캄보디아 감금 대다수가 대한민국 20대 청년"
"실업, 가계대출 몰린 청년들 비극…국가 외면" 지적
전문가들 "20대 청년 문제로 몰아선 안 돼" 한 목소리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번 송환 대상자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사기)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호송 차량 23대 등을 타고 충남경찰청 등 6개 관할 경찰관서로 압송된다. 2025.10.18/뉴스1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번 송환 대상자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사기)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호송 차량 23대 등을 타고 충남경찰청 등 6개 관할 경찰관서로 압송된다. 2025.10.18/뉴스1
"저는 그저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가고 싶었을 뿐이에요." (2022년 10월)
"알바로 버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외국에서 좀 고생해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2025년 10월)

[파이낸셜뉴스] 2022년 베트남 여성 리 타이 란과 2025년 한국의 대학생 이모씨는 모든 게 닮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온라인에서 '고수익 알바'라는 광고 글을 본 뒤 캄보디아 행을 택했다. 별도의 기술이나 자격은 필요없었다. 란은 베트남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급여나 조건이 좋아서, 이씨는 매번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게 미안해 캄보디아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뺏긴 뒤 '어딘지도 모를 곳'에 끌려가 갇혔다.

수 개월 동안 스캠 범죄를 저지르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매질을 당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했다.

모든 게 닮은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란도, 이씨도 모두 20대 청년이었다.

20, 30대라서?

정부합동대응팀은 지난 18일 대한항공 전세기를 동원해 캄보디아에 구금됐던 한국인 64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마스크를 쓰고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난 이들 대부분은 20, 30대였다. 지난 16일에도 캄보디아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던 20대 남성이 출국을 시도하다 제지됐다. 캄보디아에서 구금됐다 피살된 박모씨도 22살의 대학생이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도 송환된 64명에 대해 ‘벼랑 끝 청년 외면하고, 피의자부터 송환한 정부 대응'이라는 논평을 내면서 '20대 청년'에 주목했다.

최 대변인은 “캄보디아의 지옥 같은 감금 시설에서 울부짖던 이들 대부분이 대한민국의 20대 청년이었다. 우리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고용 사기와 범죄 조직의 덫에 걸린 현실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했다.

이들이 '고수익' 미끼에 캄보디아에 간 이유도 설명했다.

최 대변인은 “청년들의 비극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국가가 외면한 구조적 절망의 결과”라며 “29세 이하 청년 고용률은 17개월째 하락해 45.1%에 그쳤고, 20대 가계대출 연체율은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은 0.41%에 달한다"고 짚었다.

이어 "학자금 대출을 6개월 이상 상환하지 못한 청년만 5만명, 누적 연체액은 2500억원을 넘어섰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빚의 수렁에 빠진 청년들이 언제라도 범죄조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담당 수사관 등이 탑승한 차량이 20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턱틀라사원에서 지난 8월 보코산 지역의 온라인스캠범죄단지에 감금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씨의 시신을 부검과 화장을 마치고 사원을 나서고 있다. 2025.10.20/뉴스1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담당 수사관 등이 탑승한 차량이 20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턱틀라사원에서 지난 8월 보코산 지역의 온라인스캠범죄단지에 감금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씨의 시신을 부검과 화장을 마치고 사원을 나서고 있다. 2025.10.20/뉴스1

20대라 캄보디아로 갔나

2025년 20대, 30대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3포세대에서 5포·7포를 넘어 N가지를 포기하는 'N포세대'가 됐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겼고 부의 격차는 심화됐다.

국민의힘 논평처럼 팍팍한 삶이 이들을 캄보디아로 향하게 한 걸까.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20, 30대 청년'이라는 한계를 씌워서 보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고수익' 홍보글만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든 듯 세대 갈라치기에 나서면 안 된다는 조언도 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작정 청년이라고 특정하면 안 된다"고 했고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교수는 "어느 나라, 누구건 범죄의 타깃은 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은 동남아시아에 거점을 두고 일명 '사기 농장'을 운영하는 범죄 조직이 눈 여겨 본 범죄 대상이다. 국제 단체와 언론은 범죄 조직의 타깃이 된 이들의 형태를 분석했다.

지난 2022년 유엔이 동남아시아 '사기집단'의 인권 피해를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범죄 조직은 과거 낮은 교육 수준에 돈은 빨리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면 최근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까지 대상을 확장시켰다. 나이는 상관 없었다.

이런 변화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타났다고도 했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집합 금지로 집 안에 머무르며 온라인을 하는 시간이 많아진 덕에 이들을 범죄의 길로 유도하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태국, 중국, 미얀마 당국이 대대적인 작전을 통해 미얀마 감금 시설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했을 때도 상당수가 고학력자에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복학한 강모씨(23)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르바이르를 했는데 늘 돈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과거 알바 때 만난 형이 그에게 '캄보디아 알바'를 제안했다.

그는 "어차피 한국에서도 힘드니 해외에서 조금 더 고생해도 짧게 일하고 큰 돈을 벌자는 결심을 했다. 부모님이 반대해 가지 못했는데 최근 뉴스를 보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나 같은 20대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취업 포기자, 구직자 등은 범죄 단체에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

이번 캄보디아 범죄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캠 범죄 집단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우리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책을 세우기 전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범죄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국제정의사명 캄보디아(ICMC)의 제이콥 심스 이사는 "각 나라마다 피해자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범죄 조직에 들어간 사람들 중 일부만 조직원으로 그곳에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중간 어딘가에 있다. 그들은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동시에 감금과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의 특성 분석도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수익' 홍보글이 의심될 법도 한데 캄보디아로 간 데는 이유가 있다. 경제적 양극화, 취업 문제, 해외 생활의 호기심과 극단주의 등 여러 가지"라며 "피해자들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캄보디아를 선택했다면, 가해자는 특정 이념이나 신념을 절대적으로 믿는 극단주의에 사로잡혀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신 교수 역시 "그들이 왜 캄보디아로 가야 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가해자들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범죄인 걸 알면서도 갔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일 경찰은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했다가 국내로 송환된 피의자 64명 중 5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4명에 대해선 별도 영장 신청 없이 석방했다.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1명은 즉시 구속됐다. 영장이 신청된 이들 중 45명은 이날 밤 구속 영장이 발부돼 현재까지 48명이 구속됐다.

'국가가 방치한 폭력'…대책 마련할 때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취업사기 및 감금 사건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된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온라인스캠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2025.10.15/뉴스1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취업사기 및 감금 사건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된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온라인스캠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2025.10.15/뉴스1

가해자 처벌과 함께 중요한 건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국제 사회가 보내온 '경고'를 무시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만든 데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반성부터 필요하다는 선제 조건도 나왔다.

신 교수는 이번 캄보디아 사태를 '국가가 방치한 폭력'이라고 정의한 뒤 "윤석열 정부는 캄보디아에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의 퍼주기, 김건희 여사의 어린이집 방문 사진 등을 통해 캄보디아를 가난한 나라,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 청년들은 캄보디아에 대한 경계를 풀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경제적 자립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은 범죄 조직에겐 먹잇감이 됐을 것"이라며 "유럽의 경우 대학생은 졸업 때까지 수당을 주는데 우리는 그게 안된다. 수당은 어려워도 돈벌이의 압박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 정부가 제대로 세워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스캠 범죄 조직을 대응하는 범위도 캄보디아로 국한해선 안 된다는 경고도 했다. 엠네스티와 유엔은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과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계 범죄 조직이 활동한다고 보고했다

곽 교수는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을 소탕한다고 이들의 스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동남아시아에 얼마나 많은 조직들이 있나"면서 "조직 하나 없어지면 경쟁자가 줄어드는 셈이니 다른 조직이 세력을 키울 것"이라고 봤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청년들에게 범죄의 위험을 알리는 맞춤 교육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곽 교수는 "피해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지금이라도 범죄의 위험을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면서 "젊은 세대에 어필할 동영상이나 쇼츠를 만들어 알리는 방법도 있다. 이미 대만이나 일본에선 이 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제안했다.

구 교수 역시 "피해자는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한편 청년들에겐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마무리는 2년 전 캄보디아에서 구금됐다가 탈출한 베트남 청년 란의 말로 대신한다.

"지금 누가 제게 와서 괜찮은 급여의 가벼운 직업이 있다고 하면, 저는 그 사람을 어떤 신문이든 1면에 실어서 신고할 거예요. 쉬운 직업으로 돈 버는 건 없으니까요. 제가 그걸 겪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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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