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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에 20㎏ 빠졌어요"… 50명 중 1명 비만치료제 맞았다 [비만치료제 전성시대 (상)]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23 18:26

수정 2025.10.23 18:25

상반기 처방 100만건 돌파
삭센다·위고비·마운자로 등
다이어트·만성질환 관리 효과
#. 3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체중계 위에 오르는 게 두려웠다. 잦은 회식과 야식,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체중이 80㎏까지 늘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헬스장 등록과 식단 조절을 시도했지만 항상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처방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A씨는 "주사를 맞고 나서 식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억지로 더 먹으면 몸이 거부감을 느꼈다"며 "그 대신 구역감과 어지러움이 따라왔지만 체중이 눈에 띄게 줄자 운동할 의지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약 4개월 만에 체중을 20㎏ 감량해 60㎏ 초반대로 줄였다. 이후 '요요'현상으로 3~4㎏이 다시 늘었지만, 위고비 사용을 중단하고 다이어트 한약과 식단 조절로 체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4개월만에 20㎏ 빠졌어요"… 50명 중 1명 비만치료제 맞았다 [비만치료제 전성시대 (상)]


■비만은 질병, 치료 시대 열렸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살 빼는 주사'로 불리는 비만치료제 주사가 일상화되면서 올해 상반기 처방 건수가 이미 100만건을 넘어섰다. 단순 계산으로 국민 50명 중 1명꼴로 비만치료제를 맞은 셈이다.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비만치료제 처방 건수는 114만18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181만3386건)의 63%에 해당하는 규모로, 하반기 추이를 고려하면 연간 200만건 돌파가 확실시된다.

비만치료제의 연간 처방 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3개월 이상 장기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 만큼 연간 1명 1회 처방으로 단순 계산하면 전체 5000만 국민 중 2.3%가 상반기 중 비만치료제를 맞았고, 200만건을 돌파할 경우 4%의 국민이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체내 에너지 대사 이상으로 인해 각종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대사성 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비만 유병률은 2008년 31.8%에서 2023년 38.4%로 상승했다. 10명 중 4명은 비만에 해당하는 셈이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지방간, 관상동맥질환 등 각종 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GLP-1 계열 약물의 등장 이후다.

GLP-1 유사체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이다. 이 약물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배출을 지연시켜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며 △뇌의 식욕조절 회로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 대표적인 약물이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와 '위고비',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다.

시장 성장세는 글로벌 제약사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비만을 단순 체중관리가 아닌 만성질환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확산과 체중감량 효과가 입증된 신약의 등장으로 '비만치료제 붐'이 본격화된 것이다.

■2030년 137조 시장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단기적인 유행을 넘어 만성질환 관리 영역으로 진입하는 모양새다. 다이어트 목적뿐 아니라 지방간, 당뇨,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병용 치료 수요가 증가하면서 장기 복용 환자 비율도 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이 2030년 1000억달러(약 13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도 빠르다. 지난해 1900억원 수준이었던 시장 규모는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이미 2718억원으로 전년 전체 기록보다도 50% 이상 커졌다.

A씨 사례처럼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는 데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다.
구역감, 어지러움, 변비, 설사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으며, 복용 중단 시 일정 부분 요요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은 만성질환이므로 약물은 관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생활습관 개선 병행을 강조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이 비만의 병태생리를 직접 겨냥하는 첫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