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신정동 살인사건 범인 20년 만에 특정

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1 14:25

수정 2025.11.21 14:25

23만명 분석·국제공조까지 동원
병원 보관 검체에서 DNA 일치 확인
피의자 이미 2015년 사망
지난 2005년 6월 범행 당시 인근 초등학교에서 포대와 노끈으로 결박된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지난 2005년 6월 범행 당시 인근 초등학교에서 포대와 노끈으로 결박된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파이낸셜뉴스]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장기 미제로 남은 지 20년 만에 특정됐다. 경찰은 최신 유전자 분석기법을 적용해 두 사건이 동일범 소행임을 확인한 뒤, 전국을 돌며 사망자까지 DNA를 대조한 끝에 범행 당시 빌딩 관리인이던 60대 남성 A씨를 최종 피의자로 특정했다. 그러나 A씨가 이미 2015년 사망한 사실이 확인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브리핑을 열고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장모씨(범행 당시 60대)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첫 사건은 2005년 6월 6일 발생했다.

B씨(20대·여)는 병원을 찾았다가 휴일로 운영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귀가하던 중 신정동 한 빌딩 지하 창고로 끌려가 금품을 빼앗기고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시신은 쌀포대 두 개를 씌워 노끈으로 결박한 뒤 인근 초등학교 주차장에 유기된 채 발견됐다.

같은 해 11월 20일, C씨(40대·여)도 귀가 중 같은 빌딩을 들렀다가 지하 창고로 끌려가 수차례 폭행·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려 숨졌다. 시신은 비닐·돗자리에 감싸 결박된 상태로 주택가 노상에 버려져 있었다. 두 피해자 모두 쌀포대·노끈 결박 등 특징이 동일했다.

사건 직후 양천경찰서는 전담수사팀을 꾸려 감식·전과자 대조·공사현장 탐문 등을 수년간 이어갔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고, 2013년 미제로 전환됐다.

지난 9월 경찰이 경기도에 위치한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지하 공간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지난 9월 경찰이 경기도에 위치한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지하 공간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2016년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재수사에 착수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 경찰은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감정을 의뢰했고, 2020년 최신 유전자 분석 기술을 적용한 결과 두 사건의 증거물인 속옷과 노끈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이 확인됐다.

동일범임이 확인된 이후 경찰은 범행 당시 공사 현장 관계자, 전과자, 신정동 전·출입자 등을 포함해 총 23만1897명을 수사대상자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우선순위 1514명의 DNA를 전국을 돌며 직접 확보해 대조했지만 일치자는 없었다. 조선족 범행 가능성까지 고려해 중국 국가 데이터베이스 대조 등 국제공조 수사도 병행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경찰은 수사 폭을 넓혀 사망자 56명을 후보군으로 선정해 직업·동선·범행 패턴을 대조했고, 여기서 범행 당시 해당 빌딩 관리인이었던 장씨가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씨는 2015년 암으로 사망했고 유골은 화장돼 DNA 확보가 불가능했다.

경찰은 장씨가 생전 치료를 받았던 경기 남부 병원과 검체업체 40곳을 탐문한 끝에, 한 병원에서 보관 중이던 파라핀 블록·슬라이드를 확보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 장씨 DNA는 두 사건에서 나온 DNA와 완전 일치했다. 이어 장씨 근무처 18곳 탐문, 관련자 40명 조사, 2006년 성범죄 수사 기록 재검토 등 보강수사를 통해 범행 경위를 확인했다. 2006년 동일 장소에서 유사 수법 성범죄 시도가 있었던 사실도 재조사됐다.

장씨는 특이한 매듭으로 피해자들을 결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끈과 비닐, 포대가 놓였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장씨는 특이한 매듭으로 피해자들을 결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끈과 비닐, 포대가 놓였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일각에서 제기된 장씨의 '엽기토끼 사건' 동일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장씨는 "2006년 5월 '엽기토끼 사건' 발생 당시 강간치상으로 이미 수감 중이었다"며 "두 사건 사이 연관성은 없다"고 밝혔다. 신정동 살인사건은 장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범인의 생사와 관계 없이 장기 미제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