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선도국 대비 크게 뒤쳐져
자본 조달과 상장 유지도 제약이 많아
장기전 AI 신약개발, 제도로 뒷받침해야
자본 조달과 상장 유지도 제약이 많아
장기전 AI 신약개발, 제도로 뒷받침해야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K바이오 대도약 전략’과 ‘인공지능(AI) 신약개발 R&D 사업’을 잇따라 발표하며 AI 기반 신약개발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은 여전히 제도적 제약과 자본 취약성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I 신약개발은 속도가 빠르다고는 해도 최소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과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장기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규제 환경은 단기 성과 중심에 머물러 글로벌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D 체급 선도국 대비 작고 규제도 장애물
26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 AI 신약개발 기술 경쟁력은 글로벌 9위 수준으로, 양적·질적으로 선도국 대비 크게 뒤쳐진다. 이러한 격차는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전체 R&D 예산은 29조6000억원에 달하지만, 제약·바이오 분야는 1조8124억원, 전체 대비 0.27%에 불과하다.
제도적 한계도 성장을 가로막는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이 법차손 규정에 묶여 R&D를 늘릴수록 상장 위험이 커지는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거래소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당장 수익이 나는 사업으로 방향을 틀거나 M&A로 외형 키우기에 나서는 역설적인 현상까지 발생한다.
글로벌 시장은 AI 신약개발 기업들에 자본과 규제 유연성을 아낌없이 제공하며 산업의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리커전은 나스닥 상장 당시 7000억원 이상을 확보했고, 지난해에는 엔비디아로부터 700억원 규모의 전략 투자를 유치했다.
아시아의 인실리코 메디슨도 시리즈 E 단계에서 약 1000억원을 조달했다. 이들은 이미 임상 2·3상 단계 약물을 보유하며 AI 신약개발의 첫 상용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반면 국내는 상장 유지 요건 자체가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벤처캐피털(VC) 등 민간 자본이 보수적 투자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업계에서는 “AI 신약개발을 육성한다면서도 제도는 오히려 장기 투자를 막는 구조”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단기 실적 요구 구조, AI 신약개발 가로막아
국내에서는 파로스아이바이오, 신테카바이오, 온코크로스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들 기업은 상장 전 약 370억~4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했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추가 자금을 확보했지만, 글로벌 선두 기업 대비 격차는 크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자체 플랫폼 ‘케미버스’를 기반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초기 임상까지 자체 수행하는 통합형 기업이다. 올해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치료제 ‘PHI-101’ 글로벌 임상 1상에서 유의미한 효능을 확보하며 AI 신약개발의 임상 성과를 입증했다. 또 미국 엔비디아의 신약 공동개발 프로그램 ‘인셉션’에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온코크로스는 적응증 확장 기반 AI 기술로 근감소증·항암제·췌장암 치료제 등을 파이프라인으로 보유하며 임상 진입을 확대 중이다. 신테카바이오는 자체 발굴 신약과 함께 AI 플랫폼 ‘딥매처’를 활용해 국내외 제약사들의 후보물질 개발을 지원하며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AI 신약개발 역시 아직 FDA 승인 사례가 없어 장기전을 전제로 해야 하는 산업이다. 선두 기업인 리커전조차 올해 1분기에 2억달러(약 27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미국과 유럽은 AI 신약개발이 ‘10년 이상의 베팅’임을 인정하고, 규제와 자본 환경을 이를 기준으로 설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바이오를 미래 산업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기업들에는 3~5년 단기 실적을 요구하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성과 압박이 폭증해 R&D 지속성이 끊어진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AI 신약개발 육성을 선언한 만큼 R&D 예산 확대·법차손 규제 개선 등 현실적인 제도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