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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바그너에 도전합니다"…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첫 전막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27 15:44

수정 2025.11.27 14:08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국내 초연
최상호 단장 "‘링 사이클’ 향한 대장정의 중간점"
'트리스탄과 이졸데' 연출가 슈타판 메르키(오른쪽)과 협력연출 겸 안무가 크리스티나 콤테세.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연출가 슈타판 메르키(오른쪽)과 협력연출 겸 안무가 크리스티나 콤테세.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 역 브라이언 레지스터(왼쪽)과 이졸데 역 엘리슈카 바이소바가 연기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 역 브라이언 레지스터(왼쪽)과 이졸데 역 엘리슈카 바이소바가 연기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 역 베이스 박종민과 슈테판 메르키 연출(오른쪽)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 역 베이스 박종민과 슈테판 메르키 연출(오른쪽)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르케 왕 역 베이스 박종민과 슈테판 메르키 연출(오른쪽)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르케 왕 역 베이스 박종민과 슈테판 메르키 연출(오른쪽)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 무대 올리는 국립오페라단의 최상호 단장.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 무대 올리는 국립오페라단의 최상호 단장.

[파이낸셜뉴스] “바그너 예술의 정점이자 현대음악의 서막을 연 문제작을 한국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는 역사적 무대죠.”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 문법을 바꿔놓은 혁신가로 평가받는 바그너의 대작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국내 최초로 전막 공연한다. 오는 12월 4~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지난해 ‘탄호이저’로 시작된 ‘바그너 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이 임기 내내 강조해온 “미래 지향적 레퍼토리 구축과 세계 수준 제작 역량 확보” 전략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최 단장은 27일 “임기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예산과 제작 역량을 쏟아부었다”며 “바그너 대작 초연을 통해 한국 오페라 제작 능력을 올리고, 세계로 향하는 초석을 다졌다”고 말했다.

■“6시간의 바그너, 고행이자 순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독일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왕의 조카 트리스탄은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왕의 신부로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떠난다. 이졸데는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이가 트리스탄임을 알게 되고, 굴욕적 결혼을 피하고자 독약을 마시려 하나 시녀가 이를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바그너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경험이 투영된 이 작품은 조성 해체의 신호탄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한선율을 통해 서양음악사의 전후를 가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최 단장은 “선율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며 “6시간이지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행여나 졸다 일어나도 감정의 파도 위에 다시 올라탈 수 있다. 고행 같지만 결국은 음악적 순례에 가까운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공연 전부터 화제다. 주말 공연이 벌써 매진됐을 정도.

최 단장은 “연출보다 지휘자를 먼저 섭외했다”며 “바그너에 대한 그의 열망을 오래전부터 알고,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직접 찾아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꺼내자 바로 제 손을 잡고 ‘땡큐’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서울시향이 오페라 연주에 나선 것은 무려 13년 만이다. 그는 “영속적 선율 덕에 오케스트라만 놓고 보면 사실상 단독 공연에 가깝다”며 음악적 난도를 감당할 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 “서울시향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향, 세계적 성악가와 협연
이번 프로덕션은 국내 첫 전막 공연이라 세계적 제작진이 대거 초청됐다. 연출은 지난 2023년 독일 코트부스 국립극장에서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은 스위스 출신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가 맡는다. 메르키는 작품을 '사랑의 종말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해석하며, 원작의 ‘바다 위 항해’를 ‘우주로의 여정’으로 확장했다.

트리스탄 역에는 현재 가장 강력한 '헬덴테너'로 손꼽히는 스튜어트 스켈톤이 출연한다. 헬덴테너란 바그너 작품에서 특히 활약하는 강력한 성량과 체력, 어두운 음색을 가진 테너를 뜻한다. 이졸데 역에는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가 나선다. 조산사·간호사로 일하다 뒤늦게 성악에 입문해 세계 정상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또 다른 조합으로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와 체코 출신 드라마틱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가 캐스팅됐다. 24회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 금상 수상자 이재명 등 국립오페라단이 발굴한 신예들도 참여한다.

최 단장은 “트리스탄 역은 거의 2시간을 혼자 부를 정도로 웬만한 가수는 버티기 어렵다. 지금은 외국 가수가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결국 한국 성악가들에게도 도전이 될 것이고, 반드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번 무대의 또다른 의미를 짚었다.

■초연작 중심으로 오페라단 체질 개선
내년 2월 임기를 마치는 최 단장은 지난 3년을 “오페라단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꾼 시간”으로 평가했다. 그는 전속 시즌제 솔리스트 신설, 국제 표준에 맞춘 레퍼토리 구성, 초연작 중심의 편성 등 오페라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40명 가까운 전속 솔리스트가 배출됐고, 이들이 조단역을 맡으면서 행정적 소모도 크게 줄었다"며 "무엇보다 국립오페라단 전속이라는 타이틀이 그들의 중요한 경력과 자부심이 됐다"고 돌이켰다.

초연작 중심의 레퍼토리 구성도 돋보였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한여름 밤의 꿈' '죽음의 도시'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원어 최초 전막 '탄호이저' 등 절반 이상이 국내 초연작이었다.

최 단장은 특히 바그너를 '한국 오페라 제작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규정하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달아 올린 것은 ‘니벨룽의 반지(링 시리즈)’ 제작을 위한 단계적 빌드업”이라고 말했다. '링' 시리즈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문화적 위상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국립오페라단이 아시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하우스형 제작기관’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공연예술의 산업적·경제적 가치를 환기했다.

“대작 제작은 단순 공연을 넘어 우리 제작 역량을 세계시장에 인증하는 과정입니다.
공연예술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