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완성형이 된 그녀를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골치가 아프다."
일본 배드민턴의 간판 야마구치 아카네가 이번 월드투어 파이널스 준결승에서 안세영에게 완패한 뒤 남긴 말이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포진하며 안세영과 소위 '빅4'를 형성했던 경쟁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마디다. 안세영(삼성생명)이 2025년, 배드민턴 코트를 라이벌들의 '무덤'으로 만들어버렸다.
안세영은 21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으로 시즌 11승, 승률 94.8%라는 비현실적인 성적표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숫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세영이 보여준 '진화'의 과정이다.
과거 안세영을 수식하는 단어는 '좀비'였다. 셔틀콕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걷어 올리는 질식 수비가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2025년의 안세영은 달랐다. 기존의 '통곡의 벽' 같은 수비력에, 상대의 빈틈을 포착하면 주저 없이 꽂아 넣는 날카로운 스매싱까지 장착했다. 수비형 선수에서 완벽한 '공수 겸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진화는 오랜 천적 관계마저 청산하게 만들었다. 안세영은 올 시즌 최대 라이벌인 중국의 천위페이를 상대로 7번 싸워 5번을 이겼다. 통산 전적을 15승 15패 동률로 맞추며 '천위페이 공포증'을 완전히 지워냈다. 야마구치와의 상대 전적 역시 17승 15패로 뒤집었다. 이제 더 이상 안세영에게 '천적'이나 '징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세영이 기록한 승률 94.8%(73승 4패)는 남자 단식의 전설 빅토르 악셀센(94.4%)조차 넘어서는 수치다. 올 시즌 치른 77경기 중 실제로 패배한 경기는 기권패를 제외하면 단 3경기뿐이다. 사실상 코트에 나서는 순간 승리는 안세영의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뜻이다.
스포츠 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안세영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그 격언을 비웃는 듯하다. 수비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소녀가 이제 공격까지 통달한 '완전체'가 되어 군림하기 시작했다. 적수 없는 독주 체제, '안세영의 시대'는 이제 막 1막을 올렸을 뿐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