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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ERA는 ‘0’였다. 지원군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정해영이 무너지면 KIA의 가을은 없다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8 10:00

수정 2025.12.28 13:17

4월 ERA '0'... 초반 분위기는 최고였던 정해영
6월 ERA 4.61, 7월 6.23, 8월에는 무려 9.00
7패로 최다 구원패 굴욕
2026년 정해영 도와줄 구원진 양 대폭 늘어나
이범호 감독 "일단 마무리는 정해영"
KIA 타이거즈 마무리 투수 정해영.뉴스1
KIA 타이거즈 마무리 투수 정해영.뉴스1

[파이낸셜뉴스] 2025년 KIA 타이거즈에게 '정해영'이라는 이름은 가장 뜨거운 환희이자, 가장 깊은 트라우마였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최다 세이브(133세이브)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리며 '제2의 선동열'로 불렸던 그가, 정작 팀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마운드 위에서 길을 잃었다. 8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 그 중심에 마무리 투수의 붕괴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다시 한번 정해영을 선택했다. 과연 이 선택은 근거 있는 믿음일까, 아니면 위험한 고집일까.

정해영의 2025년을 복기하고 2026년을 전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뉴스1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뉴스1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해영의 2025시즌 성적은 3승 7패 27세이브 평균자책점 3.79. 겉보기엔 준수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다. 구원패 7회(리그 최다), 블론세이브 7회(리그 2위). 마무리가 무너진 7번의 경기는 단순한 1패가 아니라 팀 분위기 전체를 갉아먹는 치명타였다.

특히 7월 22일 광주 LG전은 KIA의 시즌을 집어삼킨 '트리거'였다. 한준수의 역전 홈런으로 8회말 6득점, 기적 같은 대역전극을 눈앞에 뒀던 그날. 9회초 마운드에 오른 정해영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무려 4실점 하며 경기를 내줬다. 그 충격은 스윕패와 6연패라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악몽은 반복됐다. 8월 16일 두산전 역전패, 8월 31일 KT전에서 김규성의 기적 같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 터진 직후 허용한 3실점 패배. 팬들이 기억하는 2025년의 정해영은 '수호신'이 아닌 '역전패의 빌미'였다.

정해영이 처음부터 무너진 것은 아니다. 4월의 정해영은 언터처블이었다. 9.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 5월까지도 2.57의 훌륭한 성적을 유지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5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6-3으로 승리한 KIA 마무리투수 정해영과 포수 김태군이 손을 잡고 있다.뉴시스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5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6-3으로 승리한 KIA 마무리투수 정해영과 포수 김태군이 손을 잡고 있다.뉴시스

6월 ERA 4.61, 7월 6.23, 그리고 8월에는 무려 9.00까지 치솟았다. 전형적인 '오버페이스'의 결과다. 초반의 잦은 등판과 멀티 이닝 소화가 누적되면서 여름 승부처에서 구위가 급격히 떨어졌다.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니 코너워크에 매달렸고, 이는 뼈아픈 장타 허용으로 이어졌다. "구위가 가장 좋지 않을까"라는 이범호 감독의 시즌 전 기대는 체력 저하라는 암초를 만나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2026시즌, 정해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한 희망이 섞여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불펜의 양적 팽창'이다. 정해영 혼자 짊어져야 했던 짐을 나눠 쥘 파트너들이 대거 합류했다.

베테랑 이태양의 가세는 천군만마와 같다. 여기에 트레이드로 영입된 김시훈, 한재승, 그리고 유망주 홍민규와 강효종까지 1군 불펜 진입을 노린다. 기존 필승조인 전상현, 최지민, 성영탁에 황동하까지 시즌 초반부터 합류한다.

전상현.뉴스1
전상현.뉴스1

역투하는 성영탁.연합뉴스
역투하는 성영탁.연합뉴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정해영이 더 이상 '1이닝 이상'을 책임지거나, 8회 위기 상황에 조기 등판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9회, 1이닝, 세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는 체력 이슈로 무너졌던 정해영에게 가장 강력한 반등 요소다.

이범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김원중(롯데)의 사례를 들었다. FA 직전 해에 부진했다가 이듬해 반등한 것처럼, 정해영 역시 한 해의 부침을 겪고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마무리 투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배포'와 '경험' 면에서 정해영을 대체할 자원은 냉정히 말해 현재 KIA 내부에 없다. 조상우 역시 부진했고, 외부 FA 시장은 차가웠다. 전상현의 마무리론도 대두될 수 있으나 전상현이 빠지면 허리가 텅 비어버린다.

정해영, 타이거즈 프렌차이즈 최다 세이브 기록.KIA 타이거즈 제공
정해영, 타이거즈 프렌차이즈 최다 세이브 기록.KIA 타이거즈 제공

KIA 타이거즈 제공
KIA 타이거즈 제공

KIA는 2023년 정해영이 부진하자 PS 진출에 실패해다. 2024년 정해영이 부활하자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5년 정해영이 부진하자 또 다시 8위로 추락했다.그만큼 정해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결국 돌고 돌아 정해영이다. 그는 이미 타이거즈 프렌차이즈 역사상 누구보다 많은 세이브를 올린 투수다. 선동열보다 세이브 숫자는 많다. 2024년의 영광과 2025년의 좌절을 모두 맛본 25세의 젊은 클로저.

지원군은 도착했다.
판은 깔렸다. 이제 증명은 정해영의 몫이다.
2025년의 눈물을 2026년의 땀방울로 씻어낼 수 있을까. KIA 타이거즈의 명가 재건은 정해영의 오른팔에 달려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