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컵값 따로 내라는게, 벌금 아닌가요?"..'얼죽아' 출근루틴 건드린 '따로 요금제' [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27 06:00

수정 2025.12.27 06:00

[내년부터 플라스틱 일회용컵 가격 별도 기재]
정부는 "가격 따로 표시되면 소비행태 바뀔 것"
소비자는 "돌려받을 수 없는 돈"...처벌로 인식
전국 대부분 기온이 영하권의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3일 아침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두터운 옷차림을 한 시민이 차가운 음료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5.12.3/뉴스1
전국 대부분 기온이 영하권의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3일 아침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두터운 옷차림을 한 시민이 차가운 음료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5.12.3/뉴스1

[파이낸셜뉴스] 커피 한 잔에 붙은 몇백 원의 차이가 사회적 논쟁으로 번졌다. 내년부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매하면 영수증에 음료 가격 외에도 플라스틱 일회용컵 가격이 별도로 기재된다. 정부는 POS(카운터 시스템) 설정으로 컵 가격을 영수증에 분리 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외식업계 등 현장에선 일회용컵 비용을 분리해 낮추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으로 체감될 가능성이 높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3일 탈플라스틱 대국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3일 탈플라스틱 대국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후부, "보이지 않던 비용의 표시"

27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에 따르면 기존엔 별도로 가격을 매기지 않고 커피값 안에 녹아 있던 일회용컵 가격이 구분돼 영수증에 표기된다.

정부는 컵 가격을 가게가 공급받는 가격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게 할 예정이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본사에서 공급받는 일회용컵 가격은 100∼200원으로 알려졌다. 기후부는 전체 커피 가격은 유지하면서 소비자가 다회용컵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실질적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고자 설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일회용컵을 쓰지 않고 다회용컵을 쓰는 소비자는 할인 인센티브를 받고, 탄소중립포인트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가격 신호의 효과를 강조한다. 일회용컵에 비용이 붙으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다회용컵이나 개인 텀블러를 선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비 행태가 변화한다는 논리다. 환경 정책은 캠페인이나 자율 참여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실제 행동 변화를 유도하려면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컵 따로 요금제는 이러한 환경경제학적 접근을 생활 속에서 구현한 사례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정부는 컵 따로 요금제를 보증금제의 대안 또는 현실적 선택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보증금제는 일회용컵 사용 시 일정 금액을 먼저 받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주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회수율을 높이고 재사용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보증금제가 회수·세척·물류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관리 주체를 정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반면 컵 따로 요금제는 기존 유통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 부담이 적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매장별로 자율적 적용이 가능하고, 즉각적인 가격 신호를 통해 소비자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보증금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비용과 행정 부담이 크다”고 선을 긋는다.

서울 시내 한 카페에 진열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뉴스1
서울 시내 한 카페에 진열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뉴스1
소비자 부담 늘고 형평성 문제 제기

외식업계와 소비자의 시각은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소비자들은 컵 따로 요금제를 ‘환경 정책’이 아니라 ‘벌금형 제도’로 인식한다. 일회용컵을 쓰면 돈을 더 내야 하고, 그 돈은 되돌려받을 수 없다. 반면 보증금제는 사용 후 컵을 반납하면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같은 금액이라도 체감은 전혀 다르다. 소비자에게 보증금제는 선택이고, 따로 요금제는 처벌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선택권의 문제는 결정적이다. 테이크아웃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일회용컵은 사실상 기본값이다. 출근길 직장인이나 이동 중 소비자에게 매장컵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이런 구조에서 부과되는 ‘추가 요금’은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보다 불가피한 비용으로 인식된다.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없는 요금은 정책이 아니라 전가”라고 반박한다.

보증금제는 최소한 회수라는 명확한 경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컵을 반납하면 돈을 돌려받는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제도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반면 컵 따로 요금제는 돈을 내는 순간 관계가 끝난다. 그 이후 컵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환경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이 차이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가른다는 지적이다.

형평성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왜 커피 컵만 규제 대상이 되느냐는 질문이다. 배달 음식 용기와 포장 플라스틱은 여전히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정책 부담은 특정 소비 행태에 집중돼 있다. 소비자들은 이를 환경 정책이라기보다 ‘관리하기 쉬운 대상부터 건드린 결과’로 본다.

환경 효과 역시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다회용컵은 세척 과정에서 물과 세제, 전기를 사용한다. 종이컵으로 바꿔도 플라스틱 뚜껑과 홀더는 그대로 남는다. 일회용컵 사용량이 줄었다는 수치만으로 환경 부담 감소를 단정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쟁점은 비용의 귀속이다. 컵 따로 요금제에서 소비자가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지 않다. 환경 개선을 위해 쓰이는지, 매장의 비용 보전에 그치는지 알기 어렵다. 보증금제와 달리 환급 구조가 없는 만큼, 투명성이 더욱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소비자에게 이 요금은 ‘환경 기여금’이 아니라 ‘숨은 가격 인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의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컵 따로 요금제 도입'으로 사실상 폐기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 의무로 시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일회용컵 보증제도를 도입한 유럽은 순항 중이다. 이같은 결과에서 '컵 따로 요금제' 추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보증금제도는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으면 보증금(300원)을 받게 하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컵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 정책 실패의 원인도 소비자 행동에서 찾는다. 반면 유럽에서는 회수되지 않은 컵의 책임이 생산자와 유통사, 제도 설계자에게 돌아간다.

유럽의 보증금제는 '생산자 책임 강화(EPR)'와 결합돼 있다. 용기를 시장에 내놓은 기업은 회수·세척·재활용 비용을 부담한다. 반환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투자할 유인이 생긴다. 유럽의 보증금제는 단독 정책이 아니라, 생산·유통 구조를 바꾸는 장치인 셈이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의무를 요구하기 전에, 시스템과 책임 구조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기후부는 내년 초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며, EPR 제도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