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축구에서 성적이 나지 않으면 감독이 경질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팀이 대회에서 졌다고 해서 팀 자체가 사라지는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만화나 게임에서조차 벌어지지 않을 법한 황당한 일이 아프리카 가봉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2일(한국 시간) "가봉 정부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패의 책임을 물어 축구 대표팀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보도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가봉 정부는 맘불라 체육부 장관이 직접 나서 대표팀 해체를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를 연출했다.
3전 전패의 충격, 이성은 마비됐다
사건의 발단은 성적 부진이었다. 가봉은 이번 '202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카메룬에 0-1, 모잠비크에 2-3으로 패하더니, 마지막 자존심을 걸었던 코트디부아르전마저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결과는 3전 전패, 조별리그 '광탈'이었다.
팬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하지만 가봉 정부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선 '파괴'였다. 심플리스 데지레 맘불라 체육장관은 TV 브리핑을 통해 "국가대표팀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코칭스태프 전원을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선수단에 대한 조치다. 단순히 감독만 자른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의 슈퍼스타 피에르 에메리크 오바메양(37·마르세유)을 포함한 핵심 선수들을 콕 집어 명단에서 제외해버렸다. "너희들은 이제 국가대표가 아니다"라는, 사실상의 영구 제명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가봉 정부의 이 같은 '화풀이'는 국제 축구계에서 용납될 수 없는 금기 사항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관 제13조와 17조 등을 통해 '정부의 축구협회 행정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해당 국가의 자격 정지, 국제대회 출전 금지 등 강력한 징계가 뒤따른다.
축구 졌다고 팀을 없애버린 가봉 정부의 행위는 FIFA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적 개입'의 끝판왕이다. 뒤늦게 정신이 든 것일까. 맘불라 장관의 호기롭던 브리핑 영상은 발표 직후 슬그머니 삭제됐다.
전 세계에 "우리는 축구 못하면 팀 없앤다"고 광고를 했다가, FIFA의 징계가 두려워 증거 인멸을 시도한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만약 FIFA가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징계를 내린다면, 가봉은 단순히 이번 대회를 망친 것을 넘어 향후 몇 년간 국제 무대에서 가봉의 국기를 단 유니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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