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만에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시즌2'.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매회 숨막히는 승부와 화려한 요리 향연, 잘 짜인 각본은 전편에 뒤지지 않았다.
결코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세계가 어떻게 '공존'에 성공할지가 궁금했다. 시즌2에서도 두 사람의 문법은 달랐다. 백종원은 "맛있다"며 본능적 평가로 마침표를 찍는다. 안성재는 "왜 이런 레시피를 선택했느냐"며 과정을 파헤친다. 같은 요리를 두고 칭찬과 독설이 부딪친다. 시청자는 불편하지만 재미있다. 다음 편 공개를 기다리는 중요한 이유다.
이들의 대립은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아 같다. 세상은 관중의 실패를 조롱했지만, 포숙아는 그의 본질적인 능력을 꿰뚫었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평판보다 '기능'과 '가치'를 우선시했던 관계다. 백종원과 안성재도 서로의 성향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정한 것 같다. 시즌2에서 둘의 이런 관계는 부쩍 숙성되게 전달됐다.(편집의 묘미인지는 모르지만)
대개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하려고 '설득'하려 든다. 하지만 백종원과 안성재는 닮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대가 논리를 전개할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는 법을 익혔다.
백종원은 안성재의 서늘한 해부가 끝날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렸다. 안성재는 백종원이 가진 대중적 통찰을 자신의 논리 속에 하나의 변수로 기꺼이 수용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이 그랬던 것처럼. 강한 중앙정부와 지방 분권을 주장하며 사사건건 맞섰던 그들이다. 결국 '수도 이전'이라는 절충안을 통해 각자의 핵심 가치를 지켜내면서 국가라는 거대한 배를 전진시켰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차이'를 발견하는 즉시 '적대'로 치환한다. 속도가 빠르면 경박하다 손가락질한다. 신중하면 답답하다며 밀어낸다. 대화는 사라지고 '낙인'과 '분류'만 남은 삭막한 광장이다. 정치, 세대, 젠더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 앞에서 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린다. 흑백요리사 심사위원들을 보면서 사회통합의 실천적 해법을 엿본다. 링컨이 자신의 정적이었던 윌리엄 헨리 수어드를 내각에 앉혔던 장면도 오버랩된다. 링컨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하는 방향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백종원과 안성재는 평소 욕도 많이 먹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만나면 시너지가 나고 시청자는 열광한다. 단순히 요리 대결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나와 지독하게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 앉아 끝까지 대화를 완결 짓는 어른스러움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모습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전문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혐오와 조롱이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붉은 말의 해는 격동의 시대다.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추진력과 속도를 요구한다. 말이 멀리 가기 위해서는 고삐를 쥔 기수의 절제가 필요하다. 오케스트라가 웅장한 화음을 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를 견뎌내야 하는 법이다.
백종원의 투박한 진심과 안성재의 날카로운 지성은 결코 섞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협화음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화음의 전제 조건이다. 사회적 성숙은 갈등이 없는 상태는 아니다.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상대의 언어를 경청하는 인내에서 시작된다. 더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이들이 어깨를 맞댄 채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흑백요리사의 심사석에서 우리가 본 것은 요리의 점수가 아니다. 붕괴된 한국 사회의 소통을 복원할 작은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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