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8대 음악감독 취임식서 언급
[파이낸셜뉴스] “지금 유럽에 한국 열풍이 불고 있다.”
7일 이탈리아 지휘자 로베르토 아바도(70)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8대 음악감독 취임식에서 이같이 말해 눈길을 끌었다. K컬처의 인기를 글로벌 OTT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서 확인하고 있지만, 대중문화계가 아니라 클래식업계 70대 노장 지휘자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 작곡가 주목..국악은 흥미로운 주제
아바도는 이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유럽에선 영상, 대중음악, 패션, 음식은 물론이고 클래식 음악까지 한국에서 온 다양한 예술에 큰 관심과 흥분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 성악가와 연주자들을 언급하며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 또한 큰 잠재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로서의 자부심도 드러냈다. 아바도는 “서양음악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며 “알레그로, 아다지오 등 음악용어가 이탈리아어인 것만 보더라도 이탈리아 음악가들이 남긴 전통의 깊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에 큰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동시에 “오늘날 서울은 세계적인 음악 수도로 성장했다”며 한국 음악문화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했다.
아바도 감독은 특정 K컬처 분야에 국한하기보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를 깊이 탐색하겠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전통음악과 민속적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품들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평가했다.
음악 철학 "듣는다는 행위가 가장 중요"
아바도 감독은 세계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카이자 명문 ‘아바도 음악 가문’ 출신이다. 그는 “아바도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가를 배출해 왔다”며 “가족 안에서 형성된 전통이 나의 음악적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엄격하고 원칙적인 할아버지와 상상력이 풍부한 할머니 밑에서 음악적 전통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할아버지는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바로크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가족 모두가 실내악을 중심으로 함께 음악을 하며 성장했다”며 떠올렸다. 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위대한 지휘자였다”며 “가족 구성원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저는 그 유산을 잇되, 나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음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오케스트라 상에 대해 “듣는다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휘자와 단원, 그리고 관객 간의 대화는 음악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호흡, 다양한 장르와의 상호 소통을 강조하며 “교향곡과 오페라 양쪽을 경험하고 두 영역이 서로 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취임 연주회, 오는 11일 개최
그는 취임연주회 ‘차갑고도 뜨거운’을 오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아바도의 음악 철학과 국립심포니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관현악뿐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음악까지 아우르는 국내 대표 음악 단체다. 아바도는 성악적 호흡에서 출발한 유연한 지휘와 치밀한 극적 해석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고려할 때, 극음악에 정통한 아바도의 합류는 국립심포니의 정체성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아바도는 세 시즌에 걸쳐 멘델스존과 슈만, 괴테와 음악, 셰익스피어와 음악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번 취임연주회는 로시니, 레스피기, 베르디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아바도는 취임 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2023년 오페라 '노르마'와 지난 3월 국립심포니 제255회 정기연주회 베르디 '레퀴엠'으로 신뢰를 쌓아온 바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성악에서 출발한 음악 언어를 관현악으로 확장했다. 또 신년 음악회의 관습에서 벗어난 프로그래밍을 통해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해석의 결을 보여준다.
레스피기의 ‘환상적인 장난감 가게’는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풍부한 색채가 돋보이는 발레 음악으로, 투명한 음향과 구조적 명료함 속에서 관현악의 섬세한 질서를 드러낸다.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3막 중 ‘사계’는 성악적 호흡과 관현악의 밀도 있는 흐름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극음악 특유의 감정 대비와 서사를 집약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은 힘찬 리듬과 전진하는 에너지로 새로운 출발에 힘을 싣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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