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셔널씨어터 창작 초연 뮤지컬 '캐빈'
오두막에 갇힌 두 남자 이야기…심리 스릴러에서 치유의 드라마로
박호산·하도권·윤석원·정동화·유승현·홍성원 등 연기파 배우들 총출동
오두막에 갇힌 두 남자 이야기…심리 스릴러에서 치유의 드라마로
박호산·하도권·윤석원·정동화·유승현·홍성원 등 연기파 배우들 총출동
[파이낸셜뉴스] 창밖에는 매서운 태풍이 몰아치고, 무대 위에는 세상과 단절된 낡은 오두막이 서 있다. 어딘지도 모르겠는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 두 남자는 서로의 존재를 의심하고, 누가 그들을 이곳에 가뒀는지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밀실추리극 같은데, 이야기는 중후반부로 치달으며 전혀 다른 전개를 향해 나아간다.
서울 종로구 이티 씨어터 원(et theatre 1)에서 공연 중인 창작 초연 뮤지컬 '캐빈'의 진짜 재미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고립된 오두막,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심리전
이야기는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 '캐빈(Cabin)'이라는 제목 그대로 낡은 오두막에서 시작된다.
초반부 전개는 밀실 스릴러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는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을 유심히 지켜보다 보면, 이 극이 범인을 찾거나 탈출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채게 된다. 대신 얽히고설킨 기억의 틈새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한 심리 묘사 속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묵직한 깨달음을 안긴다.
관객은 제3의 관찰자가 되어 이들의 대화와 눈빛을 쫓는다. 좁은 오두막 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피아노, 첼로의 선율은 관객을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함께 가둔다.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거짓말은 누구를 지키기 위함인가. 서로가 품은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고, 감춰왔던 기억과 마음이 드러날수록 이야기를 지켜보던 관객들도 감정의 진폭이 고조된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미로, 배우 6인의 열연
'캐빈'의 가장 큰 매력은 반전 그 자체가 아니라,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특히 거대 제약회사의 불법 행위를 알고 있는 내부고발자 마이클과 정의를 좇는 기자 데이, 두 인물이 쌓아가는 관계성이 반전을 기점으로 폭발하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단 두 명의 배우가 90분간 무대를 끌고 가야 하는 2인극인 데다,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극인 만큼 실력파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비밀을 간직한 내부고발자 '마이클' 역에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나의 아저씨' 등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박호산과 압도적인 성량과 피지컬을 자랑하는 하도권, 그리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윤석원이 캐스팅됐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 '데이' 역에는 대학로의 '믿고 보는 배우' 정동화와 섬세한 감정 연기가 돋보이는 유승현, 탄탄한 실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홍성원이 출연한다. 예리하면서도 집요하게 마이클을 파고드는 이들의 에너지는 극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여기에 배우 출신인 박한근 연출이 섬세하게 이끌어낸 다양한 연출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에서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힐링극까지 한 번에 완성된다.
90분의 러닝타임을 밀도 높게 사용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장르를 전복시키는 실험적인 시도와 주인공들의 관계를 매끄럽게 녹여내고 뒷받침하는 음악, 여기에 영화적인 느낌을 주는 연출까지 더해져 관객들을 이들의 기억 속으로 인도한다.
마이클 역의 박호산은 '캐빈'을 "남겨진 이들의 연대기"이자 "치유와 극복을 통해 스스로를 용서할 용기를 주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그의 말처럼 뮤지컬 '캐빈'은 반전을 뚫고 도달한 치유의 순간, 무대 위 인물들과 함께 오두막에 갇혀있던 관객들에게도 조용한 위로를 전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마주해야만, 비로소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뮤지컬 '캐빈'은 서울 종로구 이티 씨어터 원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공연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