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울의 지하철은 평소보다 20%가량 늘어난 승객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파업은 이틀뿐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역대 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시는 단 이틀 만에 20억원 넘는 돈을 썼다. 지하철 증회 운행 5억6000만원, 전세버스 임차료 15억원. 노사갈등 비용을 시민 세금으로 메운 셈이다. 파업이 길어졌다면 그 숫자 뒤에 0이 하나씩 더 붙었을 것이다.
버스 운전기사들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루 종일 핸들을 잡고 온갖 민원에 시달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그런 노고를 각인시키기보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낙인만 선명하게 남겼다. 사전 공지도 제대로 없었고, 시민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본질은 '준공영제'에 있다. 서울 시내버스는 민간업체가 운영하지만 적자는 서울시가 세금으로 메운다. 현재 누적 적자가 1조원이다. 버스 운송비용의 65%가 인건비인 상황에서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곧 서울시 예산, 즉 시민 주머니로 직결된다.
그런데 이틀간이나 파업을 해야만 했을 정도로 사측의 제안이 노조에 부족한 수준이었을까. 사측은 법정 근로시간 209시간 기준으로 10.3% 인상을 제안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그러나 노조는 176시간 기준을 적용하라며 실질적으로 16% 이상을 요구했다. 부산, 대구 등 다른 지자체 타결 사례와 비교해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시는 수천억원의 추가 지출을 감당해야 할 판이다. 이미 막대한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데, 노조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공동화장실에서 본 '자신 없으면 한 걸음 더'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노조는 자신 있게 요구했지만, 정작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을 생각했는가. 준공영제 아래서 버스 노동자의 임금은 사측이 아니라 시민이 낸다. 그 사실을 노조도 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질문도 던진다. '서울시는 최선을 다했나.' 시의 책임론에 물음표가 찍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팩트를 보면 과오의 책임이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지 알 수 있다.
파업 직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통상임금과 별개로 0.5% 기본급 인상과 정년연장' 중재안을 냈다. 사측은 임금체계 개편을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이를 전격 수용했다. 그러나 노조는 거부하고 파업을 강행했다. 협상 결렬은 양쪽의 잘못이 겹친 결과겠지만, 어느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는 분명하다.
준공영제 아래서 버스 노동자와 시민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한쪽의 이익만 커지면 배는 뒤집힌다. 버스가 멈춘 이틀, 영하의 정류장에서 '출발 대기'만 깜빡이는 안내판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출발하지 않는 버스처럼, 우리 사회도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지만, 정작 그 권리를 지탱하는 것이 시민의 세금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사측과 서울시는 할 만큼 했다고 면죄부를 받았지만, 1조원 적자라는 폭탄은 여전히 째깍거리고 있다. 노조는 무엇을 얻었나. 분노와 비난뿐이다. 승자가 없는 이번 파업에서 우리는 또 이렇게 배운다. 공공성을 볼모로 한 파업 앞에서 시민은 언제나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ahnman@fnnews.com 안승현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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