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은 중독적이다. 유익하거나 대단한 재미가 없어도 정신을 차리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최근 모임에서도 한 친구가 "별거 아닌 피부관리 영상을 멍하니 보다 정신 차리니 두 시간이 갔더라"며 허탈해했다. 웃음이 터졌지만 그 끝은 씁쓸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서다.
숏폼 앞에서 미성년자들의 자제력은 더욱 위태롭다. 뇌과학적으로 청소년기는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기다. 자극적인 15초짜리 영상이 쉴 새 없이 쏟아질 때, 아이들의 뇌는 보상회로만 극도로 활성화되는 '팝콘 브레인' 상태가 된다고 한다. 더 강한 자극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로 변해가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정부가 직접 강력한 규제의 칼을 빼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자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호주는 세계 최초로 부모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 등 주요 SNS에서 미성년자 계정을 막지 못하면 플랫폼에 최대 수백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강도 높은 조치다. 노르웨이, 프랑스 등 유럽 각국도 유사한 입법을 검토하며 플랫폼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의 칼날' 앞에서 글로벌 빅테크들도 서둘러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유튜브가 최근 청소년 쇼츠 시청제한 기능을 도입하고, 메타와 틱톡이 보호 기능을 강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변화는 순수한 '선의'라기보다는 천문학적 벌금을 피하고 규제 수위를 낮추려는 전략적 대응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반갑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무방비했던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방어기제가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논란은 있다.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나, 가상사설망(VPN) 등을 통한 우회 가능성을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술, 담배와 마찬가지로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SNS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긴 청소년일수록 우울감과 극단적 선택 위험이 높다는 조사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율'과 '부모의 관리'에 무게를 둔다. 유튜브의 새 기능 역시 보호자가 직접 설정해야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부모는 과연 통제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 말하면서, 정작 어른들 또한 숏폼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디지털 기기를 세심히 관리할 시간과 역량을 모든 가정에 기대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지금처럼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플랫폼의 윤리, 국가의 제도 그리고 가정의 교육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톱니바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인의 절제와 리터러시 교육에만 의존하기에는 숏폼의 유혹이 너무나 정교하고 강력하다. 천문학적 자본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설계한 거대한 유혹 앞에서, 개인의 의지만을 탓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그만 보라"고 다그치기 전에 우리 사회가 먼저 기술의 폭주를 막을 안전선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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