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세 정책에 대한 위법성 판단이 임박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법안을 동원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교역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해 온 조치가 적법한지 여부를 심리 중이다. IEEPA는 통상 ‘국가 비상사태’를 전제로 발동되는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관세 부과의 핵심 근거로 활용해왔다.
“불리한 판결 나와도 다음 날부터 다시 세울 것”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불리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행정부는 곧바로 다음 날부터 (관세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지적해온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낙관하면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여러 선택지”가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어 대표가 IEEPA 외 대안으로 언급한 것은 ▲첫 임기 때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때 사용한 무역법 301조 ▲국가안보를 근거로 한 무역확장법 232조 ▲국제수지(무역수지) 문제와 관련된 무역법 122조 ▲다른 나라가 미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차별 행위를 할 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스무트-홀리 관세법 338조 등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IEEPA 외 다른 법안만으로는 관세를 정치적으로 ‘쉽게’ 이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제라드 베이커 월스트리트저널(WSJ) 수석 칼럼니스트는 “다른 법안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제품, 사유, 기간에 대한 제약이 훨씬 강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임의로 만들어낸 비상사태를 핑계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01조: ‘사유·절차’가 관건…즉시 부과 어려워
무역법 301조는 IEEPA와 달리 명확한 사유와 절차가 요구된다. 상대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위반했거나, 미국 기업에 부당·차별적 관행을 저질렀을 때 보복 수단으로 관세를 매길 수 있다. USTR이 조사를 진행하며 통상 9~12개월이 걸린다. IEEPA처럼 ‘오늘 밤 서명하고 내일부터 발효’하는 식의 기습적 관세 부과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통상 4년마다 해당 조치가 여전히 필요한지 재검토해야 하며, 사유가 해소되면 관세도 종료될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중국의 기술이전 정책, 지식재산권, 혁신 관련 정책을 조사한 뒤 301조를 근거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전기차(EV) 등을 포함한 일부 중국산 제품에 대해 301조 관세를 인상했다.
USTR은 2025년 7월 브라질을 대상으로 301조 조사를 시작해 브라질의 무역·지식재산 정책, 산림 벌채 관행, 에탄올 시장 접근 문제 등을 들여다봤다.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8월 초부터 IEEPA를 활용해 브라질산 다수 수입품에 추가 40% 관세를 부과했다.
232조: ‘국가안보’ 입증 + 상무부 조사(최대 270일)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를 근거로 대통령이 관세를 활용해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관세율 수준이나 부과 기간에 대한 법정 상한은 없지만,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선포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무부의 공식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조사 개시 후 상무장관은 최대 270일 이내에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232조는 특정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개별 산업 부문(sectors)’의 수입을 겨냥하도록 설계돼 있다. 단순히 수입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며, 그것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점을 보고서로 입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인 2018년 232조를 활용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백악관 복귀 후에도 이 두 산업용 금속에 다시 집중했으며, 2018년 조사 결과를 근거로 50%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2019년에 완료된 232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수입품에도 관세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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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조: ITC 조사·공청회 의무
무역법 201조도 그리어 대표가 제시한 대안 중 하나다. 201조는 수입 증가가 미국 제조업체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201조 관세 역시 즉시 시행할 수는 없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먼저 조사를 진행해야 하며, 청원이 접수된 뒤 180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232조와 달리 ITC는 공청회 개최와 공공 의견 수렴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또한 201조는 특정 교역 상대국의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광범위한 세금이 아니라, 산업 단위의 조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세율은 기존 관세율보다 최대 50%p까지 추가되는 수준으로 제한된다. 처음 4년간 부과할 수 있고 최대 8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관세가 1년 이상 유지될 경우 정해진 주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인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201조를 활용해 태양광 셀·모듈, 가정용 세탁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태양광 관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장하고 일부 내용을 조정했으며, 세탁기 관세는 2023년에 만료됐다.
122조: 긴급 처방에 불과
IEEPA와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대안으로는 무역법 122조가 거론된다. 122조는 대통령이 ‘근본적인 국제수지 문제(fundamental international payments problems)’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관세 시행 전에 연방 기관의 조사를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관세율은 최대 15%로 제한되며 부과 기간도 최대 150일까지만 허용된다. 그보다 오래 유지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나 달러 가치 급락 방지 등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만 발동할 수 있다는 점도 제약으로 꼽힌다.
122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5개 소기업과 12개 주 법무장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IEEPA 관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미 국제무역법원(CIT)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시정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면, 이는 IEEPA가 아니라 122조의 권한 범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338조도 거론된다. 대공황 시기에 만들어진 이 조항은 미국 상거래에 대해 차별적 행위를 한 국가, 또는 미국에 불합리한 요금이나 제한을 부과한 국가를 대상으로 보복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관세율 상한은 최대 50%다. 다만 상대국이 미국을 먼저 차별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무엇보다 338조를 관세 부과에 사용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법적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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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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