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숨 막히는 '재팬 스톰(Japan Storm)'이었다. 리더보드의 최상단(1~3위)이 온통 일장기로 뒤덮인 베이징의 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한국 피겨의 간판 이해인(고려대)이 그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내기 위한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을 갈았다.
비록 순위는 6위였지만,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해인은 22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026 ISU 사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4.38점, 예술점수(PCS) 32.68점을 합작하며 총점 67.06점을 기록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 '여왕의 부활'을 알리는 의미 있는 신호탄이었다.
이날 경기의 흐름은 일본의 독무대였다. 나카이 아미(73.83점)가 압도적인 선두로 치고 나갔고, 아오키 유나와 지바 모네가 그 뒤를 이으며 1위부터 3위까지를 모두 일본 선수들이 독식했다.
하지만 수치상의 순위에 속으면 안 된다. 메달권의 향방을 가를 3위 지바 모네(68.07점)와 이해인의 점수 차는 불과 '1.01점'.
피겨스케이팅에서 1점 차는 점프 하나, 스핀 하나, 심지어 착지 동작 한 번으로도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프리스케이팅에서의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시상대 가장 높은 곳까지도 넘볼 수 있는 사정권인 셈이다.
이해인의 연기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하지만 심판들의 '현미경 잣대'가 뼈아팠다.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에서 쿼터 랜딩(q·점프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으며 GOE(수행점수)가 깎였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에서도 어텐션(!·에지 사용 주의)과 쿼터 랜딩이 동시에 지적되며 1.36점이 날아갔다.
역설적으로 이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회전수 부족과 에지 판정만 잡아낸다면, 기술 점수에서 폭발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해인의 스케이팅 스킬과 표현력(PCS)은 이미 세계 정상급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남은 것은 '한 끗'의 정교함뿐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승부는 24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결정된다.
일본 선수들이 구축한 견고한 성벽. 그 앞에서 이해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1점 차의 턱밑 추격. 과연 이해인은 베이징의 밤, 극적인 뒤집기 한판으로 대륙의 여왕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까.
밀라노 올림픽의 전초전, 그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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