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쿠팡 사태로 한국 정치의 민낯이 세계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쿠팡에서 3370만 계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정보를 몰래 빼돌린 중국 국적의 피의자가 특정됐으나, 아직 수사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쿠팡 측의 대응에 분노했고, 정치권은 이에 질세라 쿠팡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부도 뒤질세라 새벽 배송을 중지시키거나 영업을 중지시킨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사고가 나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수세에 몰린 기업에 대해 마구잡이식 돌팔매를 던지는 일은 작금의 일은 아니다. 정치권은 분노에 찬 국민을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해 설익은 규제 법안을 내놓는다. 정부도 사고 조사보다는 사고와 관련이 없는 다른 혐의를 폭로하면서 권력의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번 사태도 예외가 아니지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는 점에서 정부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정부는 쿠팡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리고 도주한 피의자를 국내로 송환하여 조사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혀야 한다. 쿠팡이 범죄를 은폐하지 않고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쿠팡도 피해자다. 쿠팡이 정보 유출로 인해 피해를 보상해야 하지만 쿠팡도 피해자인 만큼 면밀한 조사 결과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돼야 한다.
여기서 정치적 계산은 오해를 살 뿐이다. 쿠팡이 국민적 비난을 받는다고 해묵은 문제를 들고나와 영업을 정지하고 새벽 배송을 금지하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배터리 이설 작업 중 작업자의 무주의로 화재가 발생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서비스 중단에 대한 책임을 갖지만, 하루속히 복구해서 서비스를 속개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책임을 묻는다고 서비스를 중단하면 국민은 이중으로 피해를 본다. 쿠팡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해법이 왜 달라야 하는가. 영업 중지는 영업상의 문제로 인해 영업 자체를 중지시켜 처벌 규정이다.
쿠팡 사건으로 주무 관청이 정보보호를 강화하는 조치를 면밀하게 연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보보호를 강화하는 방법이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마련돼서는 안 된다. 사건만 생기면 규제를 강화하고 규제로 국민만 피해를 본다. 새벽 배송과 정보 유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는데 정부가 관심을 가진 것은 동일인 지정과 과장 광고, 최저가 판매 시 불공정 행위 등 정보 유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정부는 실질적으로 국익을 보호하는 일이 무엇인지 걱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의연하고 냉정하게 사안을 다루는 것'이라는 위성락 안보실장의 발언은 안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표준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공정한 법과 규제를 만들고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평가의 기준은 의협심 강한 관료의 관점이 아니라 언제나 소비자의 관점이다.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규제는 그 자체로 폐기의 대상이고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처벌 규정도 폐기돼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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