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놓고 싸운다'라는 말은 오만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미 깨달았다는 내면의 확신이다. 예술가에게도, 교육자에게도 삶의 가장 큰 무대는 불확실성 그 자체다. 하지만 그 막막함 속에서 중심을 잡는 자만이 자신만의 노래를 완성할 수 있다. 그들에게 싸움은 불안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품은 신념을 증명해 나가는 필연적인 여정이다. 이 확신은 오랜 인내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익어간다.
여기서 인내는 단순히 고통을 참는 행위가 아니다. 예술과 교육의 현장에서 인내란 '익어가는 시간'을 의미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불완전함을 견디며, 매일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다. 포도주가 숙성될수록 향이 깊어지듯, 인간의 내면도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무르익는다. 인내는 시간을 신뢰하는 용기이며, 결과보다 과정의 진실함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다.
교육자에게 인내는 제자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신뢰이고, 예술가에게 인내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걸어올 때까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는 집중이다. 그 과정은 더디고 때로 외롭지만, 오직 그 시간만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예술을 깊게 만든다.
결국 인내를 통해 익어간 사람만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갖는다. 그가 부르는 '새 노래'는 타인의 음을 흉내 내지 않는다. 그 노래에는 살아온 시간의 결이 있고 내면의 깊은 호흡이 담겨 있다. 그는 세상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 음색은 화려하지 않아도 듣는 이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이겨놓고 싸우는 사람은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다. 그는 속도보다 방향을, 성취보다 성숙을 택한다. 오늘의 인내는 내일의 무르익음을 만들고, 그 결실은 다시 누군가의 확신으로 선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서로의 인내 위에서 익어가는 음악이다. 예술가도, 교육자도,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지금 그 장엄한 음악의 한 부분으로 서 있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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