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내외 웹툰·만화 산업이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실험 단계’를 넘어 전략적 활용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창작 보조 도구로 시작된 AI는 이제 번역, 글로벌 유통, 불법 복제 대응, 데이터 분석까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1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웹툰 제작 공정에서 AI 활용도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 시놉시스 작성과 캐릭터 설정을 보조하는 것은 물론, 배경 생성·채색·후반 보정 등 작화 공정 전반에 AI 툴이 접목되는 추세다. 이용자 인식도 비교적 긍정적이다.
수익 구조를 위협하는 불법 유통 대응에서도 AI 기술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웹툰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웹툰은 2017년부터 AI 기반 불법 유통 탐지·차단 기술 ‘툰레이더’를 도입해 사전·사후 대응 체계를 운영해왔다.
2025년에는 사전 차단 기능을 강화해 최신 회차의 당일 유출 작품 수를 지난해 1~3분기 평균 대비 11월 기준 약 80% 줄였다. 최신 회차 경쟁력을 떨어뜨려 불법 사이트 이용자 이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웹툰 업계는 불법 유통이 창작 생태계를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유료 결제 모델에 기반한 국내 플랫폼 구조상, 최신 회차 유출은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시장, 특히 만화 강국 일본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만화 수출 확대와 불법 복제 대응 해법으로 AI 활용 전략을 꺼내들었다. 학습, 저작권 관련해 AI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창작자와 업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AI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움직임도 콘텐츠 업계에서 나타나는 추세다.
일본 문화청은 만화 해적판 웹사이트 대응을 위해 AI 번역을 장려하고 불법 사이트 자동 추적 시스템 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일본 ABJ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사이트로 인한 일본 만화의 연간 피해액은 약 8조5000억 엔(약 79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일본 콘텐츠 산업이 2023년 기록한 해외 매출 5조8000억 엔(54조원)을 웃도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해적판 확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공식 번역 속도의 한계’를 지적한다. 일본에서 출간되는 만화 중 영어 공식 번역 비율은 약 10% 수준에 불과하다. 번역 공백을 해적판이 메우는 구조다. 민간 출판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슈에이샤와 쇼가쿠칸 등 일본 대형 출판사가 출자한 도쿄대 스타트업 '만트라'는 AI가 만화 전체 맥락을 학습해 등장인물 특성과 줄거리를 반영, 18개 언어로 번역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다만 웹툰·만화 산업에서 AI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학습 데이터 저작권 문제, 창작자 권리 침해 우려, 노동 구조 변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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