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6점 '시즌 베스트' 쾌거… 한국 피겨 역대 6번째 올림픽 '톱10' 진입
은반 홀린 매혹의 '카르멘'… 스핀·스텝 모두 최고 난도 '무결점 연기'
빙판에 쓰러져 뱉은 "살았다"… 숨 막히는 압박감 이겨낸 '안도감'
긴 '악몽' 깨고 되찾은 미소… "오래오래 스케이트 타고 싶어"
은반 홀린 매혹의 '카르멘'… 스핀·스텝 모두 최고 난도 '무결점 연기'
빙판에 쓰러져 뱉은 "살았다"… 숨 막히는 압박감 이겨낸 '안도감'
긴 '악몽' 깨고 되찾은 미소… "오래오래 스케이트 타고 싶어"
[파이낸셜뉴스] 음악이 멈추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탁 풀리듯 그녀는 그대로 빙판 위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체력이 다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칠흑 같던 긴 터널을 마침내 살아서 빠져나왔다는, 지독하리만치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았다는 완벽한 '해방'의 몸짓이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이해인(21·고려대)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찬란하게 비상했다.
이해인은 2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4.15점, 예술점수(PCS) 66.34점을 받아 총점 140.49점을 기록했다.
자신의 프리스케이팅 시즌 최고점. 이틀 전 쇼트프로그램 점수(70.07점) 역시 시즌 베스트였던 이해인은 최종 총점 210.56점으로 당당히 전체 8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여자 피겨 역사상 김연아, 최다빈, 유영, 김예림에 이어 역대 6번째로 올림픽 '톱10' 진입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출전 선수 24명 중 16번째로 은반 위에 나선 이해인의 프리 프로그램은 정열의 '카르멘'이었다.
첫 점프 과제인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하게 뛰며 산뜻하게 출발한 그는, 이어지는 모든 과제를 침착하고 대담하게 풀어나갔다.
점프엔 거침이 없었고, 스핀엔 우아함이 넘쳤다. 플라잉 카멜 스핀부터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 스텝 시퀀스까지 모두 최고 난도인 레벨 4를 끌어냈다.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부 가산점 구간에서도 흔들림은 없었다.
비록 점프 착지 과정에서 미세한 에지 사용주의(어텐션)나 쿼터 랜딩 판정이 있긴 했으나, 그의 흐름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무결점'에 가까운 투혼이었다.
연기를 모두 마친 뒤 빙판 위에 대자(大)로 누워버린 장면은 이번 대회 여자 피겨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만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억울한 오해와 중징계로 선수 생명이 끝날 뻔했던 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도 이해인은 스케이트 끈을 고쳐 매고 묵묵히 법정 투쟁과 훈련을 병행했다.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낸 21세의 청춘은 빙판에 누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이해인의 답은 꾸밈없이 솔직했고, 그래서 더 뭉클했다.
"그냥 안도감이 들었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긴장이 확 풀렸죠. 나도 모르게 드러누웠어요. 그냥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중압감 속에서도 그는 "빙판 위는 나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즐기려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보여줬다"며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는 지난날의 그늘이 완전히 가셔 있었다.
4년 뒤를 기약하는 목소리에는 다시금 피겨를 향한 순수한 애정이 묻어났다.
"당장 4년 뒤가 목표라기보단, 하루하루 건강하게 피겨를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올림픽에 또 도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지금은 엄마랑 젤라토를 먹으러 가고 싶네요"라고 그는 말했다.
자격 논란이라는 거대한 파도도, 올림픽이라는 엄청난 압박감도 끝내 이해인을 주저앉히지 못했다. 가장 낮은 곳(빙판)에 몸을 누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해인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다.
이해인의 '진짜 스케이팅'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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