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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는 경제에서 여는 경제로… 시장에 정책 유지 신뢰 줘야"[fn이 만난 사람]

서영준 기자,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2 19:00

수정 2026.02.22 19:00

저성장 탈피 해법 제시한 강성진 신임 한국경제학회장
2%도 버거운 저성장 국면 진입
에너지믹스 과감하게 실행해야
스테이블코인 법제화·투명 관리를
부동산·금융 등 정권따라 바뀌어
시스템 제 기능 못해 저성장 고착
규제보다 민간에 맡겨야 산업 성장
경제 운용 틀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은, 급하게 금리 내릴 필요 없어
기업경쟁력이 살아야 환율도 안정
재정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엔 한계
민간 생산성 높여 국가채무 해결을
강성진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이 최근 서울 안암로 고려대학교에서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규제 방식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중 갈등 상황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가그룹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강성진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이 최근 서울 안암로 고려대학교에서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규제 방식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중 갈등 상황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가그룹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한국 경제가 완만한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성장의 속도와 체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1%대 성장에 이어 올해도 2% 안팎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 경로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한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최근 서울 안암로 고려대에서 만난 강 회장은 "지금은 회복 여부보다 회복 이후의 방향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며 "제도는 계속 손봤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통제 중심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율성과 인재활용 구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중심으로 경제운용의 틀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5대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할 과제는.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개별 정책의 성패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학회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권이나 이념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정책의 일관성과 시스템적 접근을 학계 차원에서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은 최소한 1년 이상은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를 시장에 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가계가 움직인다.

―지난해 1%대, 올해 2% 수준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경제학자로서 체감하는 위기의 본질은.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2% 성장이 기준선이 됐는데, 이제는 그 2%조차 달성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설명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제도의 경직성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에도 부동산과 금융 제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제도가 안정되고 예측 가능해야 경제주체들이 움직이는데, 지금은 시스템이 정치를 따라가느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1~2%대 성장이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환율이 큰 폭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외변수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경쟁력의 문제로 봐야 하나.

▲환율은 냉정한 성적표다. 달러와 원화의 상대가격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환율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펀더멘털과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시장의 신호다. 정부가 주식시장 등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며 관리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이 살아나야 환율도 안정된다. 미국 역시 1400원대 중반 이상의 고환율을 원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급격한 상승은 제한되겠지만, 중장기 방향은 결국 우리가 미국보다 얼마나 더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규제 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 같은 선진국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우버 사례를 보면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도 일단 시장에서 혁신을 시도하게 둔다. 이해관계 충돌이나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율하고 법을 만든다. 반면 우리는 법적 근거가 없으면 일단 못하게 막는다. 이제는 민간부문이 공공부문보다 훨씬 빠르고 생산성도 높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공무원이 주도했지만, 지금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 정부는 기반을 마련하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는 사후관리형 규제로 전환해야 신산업이 자랄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 가장 먼저 걷어내야 할 낡은 관행은.

▲정부가 앞장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금융당국이 은행장들을 불러 지시하는 방식으로는 선진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민간의 창의성을 믿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잘한 것에는 확실한 보상을, 못한 것은 시장에서 걸러지게 두는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법과 제도가 디딤돌이 돼야지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중국 대학들은 밤새 불을 밝히는데, 한국 대학은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이 인재를 가로막고 있나.

▲최근 중국 칭화대를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주 52시간 개념도 없고, 교수와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자며 창업에 몰두한다. 왜 가능할까. 성공하면 그 과실이 상당 수준으로 본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교수가 창업하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겸직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고 제도적으로도 묶여 있다. 대학이 등록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려면 교수와 인재들이 성공에 비례한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

―인재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인재는 가장 먼저 환경 변화를 감지한다. 기회가 줄고 시도할 공간이 없다고 느끼면 이동한다. 인재유출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평가 결과다. 연구와 창업, 혁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더 열린 곳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 해외에서는 대학·기업·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혁신이 시장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제도적으로 이를 막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과에 대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의 대우도 중요하다. 겸직과 창업, 실패에 대한 제약이 큰 구조에서는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에 대한 우려도 크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일 해법은.

▲국가채무를 줄이려면 증세나 지출 축소밖에 없는데, 둘 다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경제 규모, 즉 국내총생산(GDP)을 키워 채무 비중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다시 민간의 생산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재정으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규제를 풀고 민간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채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 방법이다.

―탄소감축 목표와 에너지믹스 전략은 어떻게 현실화해야 하나.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는 매우 야심차다. 하지만 현실적 뒷받침 없이 추진하면 산업계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원자력을 포함한 현실적인 에너지믹스를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을 통한 수요조절 기능도 작동해야 한다. 무조건적 보조보다는 시장가격을 반영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정부가 정교하게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경제가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철강 및 조선산업 등은 글로벌 공급망과 미래기술 선점 경쟁의 미중 갈등의 핵심산업들이다. 이러한 경쟁력 장점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의 핵심산업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 그룹에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양국,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가그룹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예를 들어 반도체산업의 경우 미국·일본·대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생태계 그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중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부가가치 반도체는 중국과도 합리적 선에서 거래하는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한국은행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 정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초반으로 예상을 많이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자율 인하 압력은 덜할 것이다. 특히 물가가 2% 이내로 확실히 잡히지 않고 미국과의 금리격차 존재, 환율 불안, 가계부채 불안 등의 요인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미국이 선제적으로 인하한 이후 양국의 이자율 격차가 역전될 때까지는 급하게 기준금리 인하정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리스크 없는 산업은 없다. 금융당국이 리스크를 우려하는 사이 이미 비제도권 시장에서는 무역거래의 일부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화당국은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비제도권 거래라고 보고 통화정책 측면에서 아직은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음성거래가 더 큰 리스크이다. 흐름을 막기보다는 조속히 법제화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미국 등 주요국의 스테이블코인 활용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나.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채권과 연동시키며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도 이를 신산업 기회로 보고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세계 흐름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우리만 제도권 밖이라며 외면하면 신금융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자금유출만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시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전문가를 모아 법과 가이드라인부터 정비해야 한다.

대담 = 김기석 경제부장
정리=kkskim@fnnews.com 서영준 기자

■강성진 한국경제학회장 약력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고려대학교 경제학 학사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의장(현) △한국경제학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