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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R&D 예타 폐지, 선도형 연구국가로 가는 전환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4 18:09

수정 2026.02.25 13:50

조제열 서울대학교 수의대학장
조제열 서울대학교 수의대학장
연구현장의 오랜 염원이었던 국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가 2008년 도입 이후 18년 만에 이루어진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결정은 우리 R&D 제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예타 제도는 국가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R&D 분야에서는 그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신속하고 유연한 R&D 추진을 제약해 온 측면이 있다. 특히 연구에 대한 경제성 평가는 먼 미래의 가치를 다루는 기초·원천 연구의 본질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인 성과를 지향하는 연구가 단기적인 수치로 평가받는 과정에서 좌절되거나, 도전적인 목표 대신 안전한 성공만이 보장되는 연구로 하향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속도'였다.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바이오 등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며 기술 수명 주기는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예타라는 시스템에서는 기획 후 연구착수 시점까지 기술적 시차가 발생하곤 했다. 그 결과 국가의 중요한 과제를 도출하는 과정이 예타라는 절차에 가로막혀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미래 전략의 수립과 실행을 제약해 온 구조적 문제였다.

또한 R&D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높고 성공 여부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예타의 경제성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보다 행정과 보고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창의성과 도전성이 생명인 연구 현장에서 행정 부담이 과도해지는 구조는 연구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번 예타 폐지는 이러한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걷어내고, 연구자가 오로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번 예타 폐지는 추격형 R&D에서 선진국 수준의 선도형 R&D 시스템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이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우리나라가 보다 주도적으로 미래 기술을 개척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내실 있게 완성해 나가는 일이다. 예타 폐지가 재정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R&D 관리체계가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점검을 이어가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계의 집단지성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검토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단순한 경제성 논리가 아닌, 기술적 가치와 파급력을 중심으로 한 질적 평가체계가 현장에 뿌리 내려야 할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연구과제는 단기적 경제성보다 과학자들의 집단지성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연구는 오늘의 성과보다 내일의 가능성을 보는 일이다.
이번 예타 폐지가 우리 R&D 정책이 미래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제열 서울대학교 수의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