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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307억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한화의 노시환 베팅, 신의 한 수일까 자충수일까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25 10:00

수정 2026.02.25 10:0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계약 기간 11년, 총액 307억원 비(非) 프리에이전트(FA) 다년 계약을 맺은 노시환. 한화 이글스 제공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계약 기간 11년, 총액 307억원 비(非) 프리에이전트(FA) 다년 계약을 맺은 노시환. 한화 이글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메이저리그(MLB)에서나 볼 법한 초대형 계약이 KBO리그에 상륙했다. 한화 이글스가 간판타자 노시환을 11년 총액 307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묶어버렸다.

FA를 3번이나 거치며 KBO리그 누적 수입 1위에 올랐던 최정(SSG 랜더스·302억 원)의 기록을 단 한 번의 도장으로 넘어서 버린, 그야말로 '역대급' 사건이다.

일단 한화의 셈법은 명확하다. 올해 무사히 시즌을 마치면 첫 FA 자격을 얻는 노시환이 만약 올 시즌 40홈런이라도 때려낸다면, 구단 입장에서는 307억 원보다 훨씬 더 큰 출혈을 감수하거나 아예 그를 타 팀에 빼앗길 위험이 컸다.

4년마다 돌아오는 FA 계약의 스트레스를 원천 차단하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확실히 주저앉히겠다는 그룹 차원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선제 공격이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단순히 한화와 노시환, 두 주체만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KBO리그 전체의 생태계를 뒤흔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연합뉴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연합뉴스

당장 타 구단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른바 '노시환 스탠다드'가 세워지면서, 각 팀의 핵심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묶어두기 위한 기준선이 우주로 솟아버렸기 때문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노시환과 함께 FA 시장에 나설 예정이었던 원태인(삼성)은 물론이고, 향후 몇 년 뒤 FA 자격을 얻게 될 김도영(KIA),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 김주원(NC), 그리고 노시환의 팀 동료인 문동주(한화)까지. 이들의 에이전트가 서류 가방에 담아갈 '영점 조준'의 기준은 이제 노시환의 307억 원을 향해 있다.

이제 구단들은 핵심 자원을 미리 묶으려면 어설픈 금액이나 기간으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됐다. 아예 10년 이상의 초장기 계약을 제시하며 '평생 직장'을 보장하거나, 아니면 FA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각오해야 하는 극한의 양자택일에 놓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화는 마냥 웃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짚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물론 노시환은 KBO리그 통틀어 100홈런 이상을 때려낸 20대 타자 단 두 명(강백호, 노시환) 중 한 명일 정도로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한다. 하지만 11년이라는 초장기 계약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아직 '상수'보다 '변수'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노시환은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단 두 번(2023년, 2025년)뿐이다. 폭발력은 엄청나지만, 지난해(2025년) 타율이 0.260에 머물렀을 정도로 정교함 면에서는 아직 기복이 있다. 만약 11년의 계약 기간 중 폼이 급격히 저하되거나 부상이라는 악재를 만난다면? 이 계약은 트레이드나 방출로 털어낼 수 없는, 구단 운영 전체를 옥죄는 거대한 족쇄가 된다. 롯데가 전임 단장 시절 노진혁, 유강남, 한현희 등 대형 FA 계약을 연이어 했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며 선수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연합뉴스
KIA 타이거즈 김도영.연합뉴스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선 문동주가 역투하고 있다.뉴스1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선 문동주가 역투하고 있다.뉴스1

미래의 재무 구조도 문제다. 11년 307억 원은 연평균 약 28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KBO리그에 '래리 버드 룰(자체 FA 선수와 계약 시 샐러리캡 초과를 일부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매년 샐러리캡의 막대한 비중을 노시환 한 명에게 할애해야 한다.

이는 훗날 한화 마운드의 기둥인 문동주가 FA 자격을 얻었을 때 구단의 협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미 실탄을 너무 많이 소진한 탓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를 잡는 데 치명적인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타 팀의 다른 선수들을 영입할때도 한화가 스스로 기준을 크게 올려놓은 셈이다.

한화의 이번 베팅은 KBO리그 역사상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 계약이 11년 내내 한화 타선을 든든하게 지탱하며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주는 '신의 한 수'로 기록될지, 아니면 구단의 유연성을 빼앗고 샐러리캡을 파탄 내는 '자충수'로 남을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 2026년 2월 23일 부로 KBO리그 스토브리그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야구팬과 관계자들의 시선은 이 거대한 혁신의 계약이 그라운드 위에서 어떤 결과물로 증명될지에 쏠려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