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15일까지
[파이낸셜뉴스]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가 거칠고 역동적인 무협 활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극공작소 마방진 창단 20주년 기념작이자 고선웅 연출의 연극 ‘칼로막베스’는 고전 서사를 과감하게 뒤틀어, 권력욕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무협 액션과 슬랩스틱 코미디로 풀어낸다. ‘칼로 막 벴다’로 읽히는 언어 유희가 돋보이는 제목은 이 작품의 색깔을 잘 드러낸다.
액션 활극으로 재탄생된 세익스피어 고전
원작 ‘맥베스’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과 함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듣고 권력 욕망에 사로잡혀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만, 결국 죄책감과 불안 속에서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다.
‘칼로막베스’의 배경은 원작의 중세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먼 미래의 수감시설 ‘세렝게티 베이’다. 사자·치타·하이에나 같은 포식자와 얼룩말·가젤 등이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그 세렝게티.
원작의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나, 인물 설정과 극적 장치는 새롭게 바꿨다. 죄수와 반동분자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치 서부영화의 총잡이나 로마의 검투사처럼 영역을 나누고 서열을 나눠 싸운다. 사회는 이들이 서로 경쟁하다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방치한다. 예언을 전하는 세 마녀는 노승과 맹인술사로 바뀌어 등장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 처’로 명명하고, 여성이 아닌 남자 배우를 기용해 변화를 줬다.
공교롭게도 공연이 열리는 하늘극장은 둥근 형태로 관람석이 둘러싸인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과 닮았다. “비극일수록 유쾌하고 에너지 넘쳐야 볼 만하다”는 고선웅의 연출 기조 아래 공연은 시작부터 격렬하고 속도감 넘친다. 동시에 슬랩스틱과 언어유희가 곳곳에 배치돼 관객의 긴장을 풀어준다. 14명의 배우들이 발산하는 몸의 속도뿐 아니라 재기 넘치는 말의 리듬이 극의 활력을 더하는 식이다. 따라서 드라마 위주의 차분한 연극을 선호한다면, 이 작품의 복잡한 인물 관계와 빠른 전개를 따라가기 다소 힘들 수도 있다.
막베스와 막베스 처 활약 속 주조연 배우 호흡 돋보여
주요 무대 장치인 철제 구조물의 중앙 문이 열리면 어디선가 영화 ‘황야의 무법자’를 노래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거친 표정과 몸짓의 배우들이 하나둘씩 등장해 편을 나눠 서로를 노려본다. 칼을 맞대고 서로를 경계하는 장면부터 몸을 아끼지 않는 격투까지, 액션 영화 같은 긴장감을 만든다.
비극의 무게는 일부러 덜어냈다. “16년 전 동아연극상 수상”, “방백은 여기까지” 같은 대사처럼 고선웅 연출이 즐겨 사용하는 메타 연극적 장치가 웃음을 유도하고, “대충하고 칼질 해!” “막베스의 시대는 갔다. 이젠 막쏴스의 시대”처럼 재치 있는 대사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강렬하다. 14명의 주조연 배우 모두 생동감 넘친다. ‘막베스 처’ 역을 맡아 빨간 머리에 빨간 하이힐을 신고 첫 연극에 도전한 '국악계 아이돌' 김준수의 존재감은 특히나 강렬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다. 남편을 조종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죄책감에 따른 그의 몰락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막베스 역의 김호산은 실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액션을 펼침과 동시에 진중한 내면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칼로막베스’는 형식은 원작과 다르지만 욕망과 죄책감, 권력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주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의 냉혹함과 삶의 덧없음이 강조된 느낌이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처럼, 붙잡으려 할수록 허무해지는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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