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어서 타' 열광 뒤의 '블랙스완'

홍수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0 18:28

수정 2026.03.10 18:43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재벌 회장이 전쟁터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타"라고 손을 내미는 밈(meme·유행 콘텐츠)이 언론에 알려진 게 지난달 13일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이 안 되는 이 밈이 주식시장에 정확히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모른다. 다만 그 뒤로 많은 사람이 밈에 열광한 게 사실이고, 이 중 상당수가 주식 매수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빚을 내 주식을 사는 '빚투'가 늘면서 5대 은행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최근 3일 만에 1조3000억원 폭증했다.

'어서 타' 밈을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밈 소비가 위험하게만 보인다. 기업과 산업의 동향을 일일이 설명할 여유가 없으니 일단 주식을 사라는 밈은 우리가 그토록 경계해온 '묻지마 투자'를 권하는 것 아닌가. 사업보고서와 미래가치를 꼼꼼히 분석하라는 조언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말이 돼 버렸다. 무엇보다 이 밈이 불순한 의도로 제작됐고, 주가 부양에 악용될 수 있다는 상상에 이르면 아찔하다. 위험은 늘 보이는 곳이 아니라 뒤통수에서 튀어나온다.

지금 한국 증시는 매도 사이드카와 매수 사이드카가 번갈아 울리는 현기증 시장이다.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한 금액이 역대 최대인 33조원을 넘어섰다. 증시가 며칠 연속 급락하면 증권사는 빚투 주식을 강제 청산한다.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 구조다.

정치인들은 주가에 관심이 많지만 개미들이 직면한 리스크를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의 리스크는 현 정부 들어 주가가 배로 올랐다는 점도, 이란 사태로 주가가 너무 빨리 빠졌다는 점도 아니다. 세상의 리스크는 아는 리스크와 모르는 리스크, 2가지다. 전자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가계부채,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이 그렇다. 중요한 이슈지만 모두가 주시하고 있어서 뇌관을 관리할 수 있다. 웬만해선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 정작 뒤통수를 치는 건 모르는 리스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사태,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수많은 '아는 리스크'에 둘러싸여 있다. 이란 사태와 고유가, 가계부채, 대미투자…. 문제는 정치가 '아는 리스크'를 '모르는 리스크'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걸 정권의 성과나 책임으로 단순화하면 구조적 위험이 수면 아래로 들어간다. 지수를 떠받치기 위해 유동성을 늘리는 사이 부채의 취약한 고리는 더 약해질 수 있다. 여신조건이나 금리 변화 같은 작은 계기가 자영업자 대출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순간 우리가 본 적 없는 리스크, 관리 불가능한 충격인 '블랙스완'이 나올 수 있다.

현 정부는 부동산에 비해 주식에 더 투자하면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흐른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투자 자체가 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주식 거래는 기존 주식을 사고파는 자산 매매 성격이어서 기업에 직접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주식투자로 주가가 오르면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진다. 이런 간접적 효과를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부동산도 그렇다. 집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는 자산 거래이고, 생산활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거래가 활발해지면 신규 개발과 분양사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건설사의 투자와 고용, 연관산업의 생산이 늘어날 수 있다. 한쪽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는 게 문제이지 부동산은 언제나 비생산적이고, 주식만 생산적인 게 아니다.

지난해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금융위 당국자가 있다. 그는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지시에 매달려 있다.
좀비기업 퇴출, 코스닥 혁신, 기관투자 비중 확대 등 증시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한다. 주가 띄우기가 아니라 '블랙 스완'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증시를 만들기 바란다.
'어서 타' 밈에 열광하고, 단타에 출렁이는 시장에서는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syhong@fnnews.com 홍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