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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죽을 줄 몰랐어" "사도세자야?"..'왕사남' 관람평에 순간 '정적' 흘렀다

문영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2 04:50

수정 2026.03.12 04:50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이 1000만명을 넘긴 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왕과 사는 남자' 광고물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이 1000만명을 넘긴 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왕과 사는 남자' 광고물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1000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관람 후 관객들의 반응을 전한 게시물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1일 뉴시스에 따르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영화 '왕사남'을 관람하고 나온 한 누리꾼의 목격담이 올라왔다.

글을 쓴 A씨는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 한 관람객이 '진짜로 죽을 줄 몰랐어. 죽인 척 연기하고 도망치게 만들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면서 "순간 엘리베이터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이어 "나도 한국사를 그리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이건 너무하는거 아니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며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자신이 무식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풍조가 문제", "모를 수도 있지 라며 당당한 태도가 황당", "예능에서 일반 상식이 부족한 것을 웃음 소재로 소비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 등 의견을 냈다.

한 누리꾼은 "저 사람이 사도세자냐"고 묻는 관객을 봤다는 사례도 전했다.

다만 영화적 각색 가능성을 들어 관객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영화니까 감독이 결말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중간 과정은 각색할 수 있어도, 역사적 실존 인물의 생사라는 명백한 결말을 뒤바꾸는 것은 역사 왜곡이자 기본 상식의 문제"라는 재반박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역사 교육이 단순히 시험을 위한 암기 위주로 흐르면서, 인물의 삶과 시대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한편, '왕사남'이 인기를 끌면서 등장인물의 역사 속 실제 모습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인공인 단종과 엄흥도를 넘어 그 주변 인물들로 관심 범위가 확대되면서 관련 지자체도 움직이고 있다.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 한 금성대군(1426~1457)도 그중 한 명이다. 금성대군이 최후를 맞은 곳인 경북 영주시는 금성대군 유적 등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 운영 계획을 지난 6일 밝혔다.

금성대군은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아들이다. 세종에게는 18명의 아들이 있었다. 8명은 왕비인 소헌왕후, 10명은 후궁 소생이었다. 금성대군은 소헌왕후가 낳은 여덟 대군 중 여섯째였다. 대군 중 둘째인 제7대 국왕 세조는 금성대군보다 아홉 살 위인 동복형제였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왕위 찬탈로 나아갔다. 금성대군은 그런 형의 반대편에 서서 단종을 지지했다.

수양대군은 금성대군을 그냥 두지 않았다. 1455년 금성대군은 무사들과 결탁해 파당을 만든다는 혐의로 경기도 삭녕(지금의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으로 유배됐다. 얼마 후 유배지는 경기도 광주로 바뀌었다. 그해 수양대군은 세조로 즉위했다.
이듬해 금성대군 유배지는 수도에서 훨씬 먼 경상도 순흥(지금의 경북 영주시 일대)으로 다시 바뀌었다. 재산은 몰수됐다.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비밀리에 거사를 도모했으나 1457년 거사 계획이 조정에 누설, 사약을 받았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