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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1조? 우린 잃을 게 없다… 8강 결전 앞둔 태극전사, 생소함과 낭만으로 부딪혀라 [2026 WBC]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3 21:00

수정 2026.03.13 21:09

도쿄돔 눈물바다 딛고 선 마이애미… 17년 멈췄던 심장이 뛴다
소토·마차도 '1조 원의 우주 방위대'… 연봉 명세서로 야구 하나
1명 부족한 류지현호의 팍팍한 마운드… 무기는 '절실함과 낭만'
승패보다 값진 세계 최정상과의 진검승부… 후회 없이 맘껏 즐겨라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 7-2로 승리해 WBC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뉴시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4차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 7-2로 승리해 WBC 본선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한국 야구의 시계가 무려 17년 만에 다시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200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멈춰 섰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의 꿈이, 2026년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의 붉은 태양 아래서 찬란하게 부활할 채비를 마쳤다.

운명의 8강전(한국시간 14일 오전 7시 30분)을 하루 앞둔 결전의 땅 마이애미에는 긴장감보다 더 짙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설렘이 감돌고 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도미니카공화국은 흔히 말하는 '우주 방위대' 그 자체다. 후안 소토, 매니 마차도,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선발 라인업의 몸값을 합치면 가볍게 1조 원을 훌쩍 넘긴다.



야구 게임에서나 볼 법한 이 비현실적인 메이저리그(MLB) 올스타 군단이 바로 우리 투수들이 상대해야 할 타자들이며, 우리 타자들이 뚫어내야 할 거대한 산이다.

포효하는 박영현.KBO 공식 SNS
포효하는 박영현.KBO 공식 SNS

심지어 우리는 에이스 손주영의 헌신적인 부상 이탈과 160km 대체 카드 무산으로 인해, 상대보다 투수 한 명이족한 팍팍한 살림살이로 마운드를 꾸려야만 한다.

하지만 야구는 연봉 명세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운드와 타석 사이의 18.44m, 그 짧고도 긴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선수의 심장과 절실함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슈퍼스타들에게 이번 대회가 시즌 개막을 앞둔 화려한 이벤트전이라면, 지옥 같았던 도쿄돔의 경우의 수를 기적처럼 뚫고 마이애미행 전세기에 오른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이번 경기는 야구 인생을 건 '증명'의 무대다.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토너먼트의 압박감은, 잃을 것이 없는 도전자보다 지켜야 할 자존심이 많은 챔피언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르기 마련이다.

거기에 한국 야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는 생소함이다. 도미니카 선수들은 한국 야구가 생소하다. 언더핸드 고영표의 명품 체인지업 등은 도니미카 전에 충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밖에 9명의 선수가 1이닝씩 끊어간다는 마음으로 마운드를 운영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서로를 잘 알고 하면 강한 쪽이 이긴다. 하지만 서로가 생소하면 꼭 강한 쪽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야구가 가진 본질이자 매력이다.

1R 전체 타점 1위를 기록한 문보경.KBO SNS
1R 전체 타점 1위를 기록한 문보경.KBO SNS

무엇보다 이번 8강전은 승패를 떠나 우리 한국 야구가 세계 최정상과 잊지 못할 진검승부를 펼치는 '축제의 장'이다.

KBO리그를 호령하는 우리 선수들이 언제 다시 이렇게 완벽하게 꾸려진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타선과 마운드를 상대로 자신의 기량을 시험해 볼 수 있겠는가. 베테랑 류현진의 노련한 체인지업이 마차도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고, 고영표의 마구 같은 무브먼트가 소토의 타이밍을 빼앗는 상상만으로도 1200만 야구팬들의 피는 이미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분위기는 최고다. 절실하면서도 함께 뛰고 있다. 연봉 명세서에서는 비교가 안될지 모르나 4강 무대를 바라는 절실함에서는 대한민국이 그들보다 절대 뒤지지않는다.

부동의 1번타자, 슈퍼스타 김도영.KBO 공식 SNS
부동의 1번타자, 슈퍼스타 김도영.KBO 공식 SNS

"다치지 말고, 위축되지 말고, 그저 후회 없이 즐겨라."
지금 이 순간, 한국 야구팬들이 류지현호에게 보내고 싶은 유일하고도 가장 진심 어린 메시지일 것이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도쿄돔에 모두 두고 왔으니, 마이애미에서는 그저 대한민국 야구의 매운맛을 세계 무대에 맘껏 뽐내주길 바란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는 거대한 칼이 아니라 작고 단단한 돌멩이 하나였다.


17년 만에 찾아온 기적의 무대 위에서, 우리 선수들이 후회 없이 던질 그 통쾌한 돌팔매질을 목청껏 응원한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