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생식기 가려워" 女 흔한 '질염'…男이 전파했나 [헬스톡]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7 05:20

수정 2026.03.17 05:20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최근 진행된 연구 결과에서 남성이 세균성 질염(Bacterial vaginosis, BV) 유발 세균을 무증상 상태로 지니고 있다가 성관계를 통해 여성에게 다시 옮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까지 BV는 주로 여성의 질 내 세균 균형 깨지면서 생기는 질환으로 인식돼 왔으나, 잦은 재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재감염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영국 내 일부 의료 현장에서는 재발성 BV로 고통받는 여성 환자의 남성 파트너까지 동시에 치료하는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

"남성 파트너가 감염?"… 영국 의료계, '동시 치료' 도입

세균성 질염은 세계적으로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 질 감염으로, 여성 3명 중 1명꼴로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한 비린 냄새와 질 분비물 양상 변화, 가려움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일부 연구에서는 불임이나 조산 위험과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그동안 BV는 성매개 감염병이 아니라 질 내 세균 불균형으로 인해 발병하는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더선 보도에 따르면, 런던 북서부 지역의 일부 성건강 전문의들은 재발성 BV 환자의 남성 파트너에게 항생제 치료를 적용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성건강 및 HIV 전문의 샬럿-이브 쇼트 박사는 이미 약 12명의 남성 파트너를 대상으로 치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방식은 커플이 함께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은 물론, 남성에게는 음경에 도포하는 항생제 연고가 추가로 처방되기도 한다.

BV는 재발률이 상당히 높다. 항생제 치료를 받은 여성의 절반 이상이 6개월 이내에 다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이러한 잦은 재발의 원인 중 하나로 남성 파트너를 통한 재감염 가능성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연구진은 BV와 연관된 세균이 남성의 요도나 음경 표면에 존재할 수 있으며, 성관계 도중 여성에게 다시 전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남성은 아무런 증상이 없어 자신이 해당 세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호주 연구진 "파트너 함께 치료 시 재발률 유의미하게 감소"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최근 공개됐다.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진이 재발성 BV를 앓는 여성과 그 남성 파트너 150쌍을 추적 관찰한 결과, 여성은 전원 항생제 치료를 받았으나 남성 파트너는 절반에게만 치료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3개월간의 추적 관찰 결과, 파트너 동반 치료가 재발률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를 나타내자 연구를 조기에 마쳤다. 해당 연구 결과는 학술지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됐다.

이 연구가 발표된 이후 일부 의료진은 남성 파트너에 대한 치료를 시도하고 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인트조지스 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오스틴 우그우마두 박사는 해당 연구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했지만, 공식 지침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더 대규모의 후속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트너 치료를 보편화할 경우 다수의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해야 하므로, 치료로 얻는 이점이 잠재적인 부작용 위험보다 확실히 크다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영국의 세균성 질염 진료 지침은 '영국 성건강 및 HIV협회(BASHH)'가 제정한 것으로, 마지막 전면 개정은 2012년에 진행됐다. 기존 지침에서는 남성 파트너에 대한 치료를 권고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반영해 지침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는 파트너 치료를 고려하는 방안이 검토될 여지가 있다.

'성매개 감염' 재분류 논쟁… 보건 지침 개정 논의

한편 BV를 성매개 감염으로 새롭게 분류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쇼트 박사는 BV가 불임과 조산, 기타 성병 감염 위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해당 질환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BV가 성적 활동과 연관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일반적인 성병과 같이 파트너 간에 직접적으로 전파되는 질환으로 단정 짓기에는 아직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런던 클리닉의 산부인과 전문의 헤만트 바카리아 박사 역시 현재 지침상으로는 BV를 성매개 감염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으나, 향후 추가적인 연구 결과에 따라 분류 기준이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