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나만 당할 순 없지"… 지인 6억 지옥 밀어넣은 '피해자'의 배신[사기꾼들]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6 06:30

수정 2026.03.26 06:30

그룹 고위 임직원과 친분 내세우며
"고수익 보장해 주겠다" 속여
이자까지 가로채
법원 "피해액 크고 전부 회복 안 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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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남편이 A 그룹 회장이랑 식사하는 사이에요. 이사들하고도 친하고요. 그 그룹 계열사에서 상품권 대행사업도 하는데 한번 투자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저도 10년 동안 투자하면서 부동산이랑 땅을 샀습니다."
지난 2020년 3월 B씨(68)는 지인 C씨에게 누구나 솔깃할 만한 제안을 했다. 상품권을 수십억원씩 구입해 유통하는 A 그룹 계열사의 이사인 임직원 D씨(67)를 통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개월 뒤면 원금에 월 5%의 이자를 더해 돌려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C씨는 B씨의 말을 믿고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

지난 2020년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약 4개월 동안 C씨가 총 39회에 걸쳐 건넨 금액은 6억547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B씨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B씨의 남편은 A 그룹 임직원과 아무런 친분 관계도 없었다. A 그룹 계열사가 상품권 대행사업을 진행한다는 말도, 이사 D씨가 상품권 유통 업무에 종사하는 계열사 임직원이라는 말도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B씨와 D씨는 '한패'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가 직접 투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담당하면 D씨는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금 일부를 소개비 명목으로 B씨에게 지급할 계획이었다. D씨는 후순위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선순위 투자자들의 수당으로 지급하며 가로챈 투자금을 관리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식으로 투자금을 운용했다. B씨와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채 허위로 상품권 유통 사업을 한다고 피해자를 속였다.

심지어 B씨는 D씨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D씨는 별다른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상당한 규모의 유사수신 범죄를 일으켜 B씨의 돈을 가로챘다. B씨는 본인이 피해를 보고도 피해자 C씨를 범죄로 끌어들였다. 피해자에게 지급되어야 하는 이자까지 중간에서 받아 챙겼다. 이들은 이전에도 유사한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으며 투자금을 받더라도 약속한 수익금과 원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도 없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장원정 판사)은 지난 12일 사기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와 D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하며 사회봉사 80시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들을 질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공모 끝에 허위 상품권 유통 사업을 내세워 유사수신업을 했고 피해액이 크며 피해가 전부 회복되지 못했다"면서 "D씨는 별다른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상당한 규모의 유사수신을 했고 B씨는 이미 D씨의 범행으로 손해를 본 상태에서 오히려 사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속여 이자를 가로채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편취금 중 상당 부분을 지급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피해자에게도 피해 발생이나 확대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점, 피고인들이 범죄 전력 기재 범행과 동시에 재판받았을 경우 형평을 고려해야 하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