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건국대 조쌍구 교수팀 'DDR1' 단백질 억제 신물질 개발
상처 치유·재생 능력 2배 향상… 역노화 치료제 실마리
상처 치유·재생 능력 2배 향상… 역노화 치료제 실마리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이 발견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퇴행성 질환 치료와 상처 회복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특히 줄기세포를 몸 밖에서 대량으로 키울 때 발생하는 노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고품질 줄기세포 치료제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핵심 기술이 된다. 또한 노화된 피부나 손상된 조직의 재생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능성 화장품이나 전문 의약품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어 '역노화'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멈춰버린 재생 엔진, 브레이크를 찾아라
연구팀은 먼저 줄기세포가 나이 들면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세포 표면에서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DDR1 단백질이 줄기세포의 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DR1은 마치 세포의 재생 엔진을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연구팀은 이 브레이크를 해제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DDR1 단백질에만 입체적으로 딱 달라붙어 활동을 방해하는 화합물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수차례의 수정과 합성 과정을 거쳐, 연구팀은 AC-4067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저해 화합물을 만들어냈다. 이 물질은 유사한 단백질인 DDR2보다 DDR1에 대해 약 18배나 높은 선택성을 보여, 다른 곳은 건드리지 않고 노화 스위치만 정확히 조준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돋보기로 본 결과, 숫자가 말하는 '회춘'의 증거
연구팀이 개발한 AC-4067을 늙은 줄기세포에 투여하자 변화가 수치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세포가 늙었음을 보여주는 '노화 측정 점수(SA-β-gal)'가 낮아졌다.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은 늙은 세포군에서는 노화된 세포 비율이 약 50%에 달했지만, 신물질을 투여하자 이 수치가 절반 가까이 뚝 떨어졌다. 또한 늙은 세포에서 높게 나타나는 'DNA 손상 꼬리표(γ-H2AX)'의 양도 신물질 투여 후 크게 줄어들며 세포의 건강 상태가 회복됐다.
특히 상처 치유 실험 결과는 압권이다. 신물질은 30.9nM(나노몰)이라는 아주 미세한 양만 사용해도 노화 스위치를 효과적으로 끌 수 있었다. 이는 10억 분의 30 수준의 농도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처 치유 실험에서 신물질을 처리한 세포는 처리하지 않은 세포보다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능력이 2배 이상 향상됐으며, 상처 면적이 좁아지는 속도 역시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한미 공동연구팀이 쏘아 올린 희망의 신호탄
이번 연구는 건국대 조쌍구 교수팀을 필두로 동국대 약대 이경 교수팀, 그리고 미국 코넬대 의대(Weill Cornell Medicine) 연구진이 함께 힘을 합친 국제 공동 연구의 결실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AI 기반 신약 설계 기술과 재생 의학 기술을 결합해 만들어낸 성과라 더욱 의미가 깊다.
단순히 노화를 늦추는 것을 넘어 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는 실마리를 찾은 이번 연구는 약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Biomedicine & Pharmacotherapy'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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