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1편
[파이낸셜뉴스]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는 과연 새로운 것일까. 증기기관차가 처음 달리던 날, 의사들은 “시속 32km면 질식사한다”고 경고했다. 전화기 앞에서는 “구리선으로 악마가 들어온다”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역사는 매번 같은 결말을 보여줬다. 공포는 익숙함으로, 익숙함은 새로운 기회로 바뀌었다. 기술 혁명의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쓴 신간 'AI 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에 이 같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날은 조지 스티븐슨이 설계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 '로코모션 1호'가 운명의 첫 주행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투박한 쇳덩어리는 요한계시록의 한 페이지를 뚫고 나온, '불을 뿜으며 땅 위를 기어가는 검은 괴물' 그 자체였다.
말이 끌지 않아도 스스로 구르는 거대한 쇠바퀴의 등장은 인류가 수천 년간 유지해온 이동의 공식을 단숨에 깨뜨렸다. 사람들이 맞닥뜨린 가장 거대한 두려움은 바로 '속도'였다. 전력 질주하는 말의 속도에 맞춰져 있던 인류의 감각은 시속 약 30km로 달린다는 이 철마의 선언 앞에서 온갖 기이한 가설들을 쏟아냈다.
당시 최고 권위의 의학 저널 중 하나였던 "란셋(The Lancet)"은 인간의 호흡기가 시속 32km 이상의 공기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폐가 쪼그라들고 승객들이 질식사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위협이 전해졌다. 기차의 미세한 진동이 여성의 신체 조직을 느슨하게 만들어 자궁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자궁탈출증'을 유발하거나 즉각적인 유산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실질적인 사회적 제약으로 작용했다.
풍경이 너무 빨리 지나가 시신경이 정보 처리 한계를 초과해 '시각적 광기'에 빠지거나, 뇌가 두개골 안에서 젤리처럼 흔들려 사망할 것이라는 경고는 오히려 점잖은 편에 속했다. 성직자들은 강단에서 사탄의 발명품이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농부들은 기차 매연이 농작물을 말려 죽이고 소의 젖을 마르게 할 것이라며 생존의 위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마침내 로코모션 1호가 바퀴를 굴렸을 때, 예고된 재앙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일러는 터지지 않았고 승객들은 피를 토하지 않았다. 기차는 묵직한 기적 소리와 함께 대지를 흔들며 달렸고, 구경꾼들은 곧 경이로운 광경에 압도되어 환호성을 지르며 기차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하루, 인류의 인식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죽음의 속도'라 불리던 시속 30km는 불과 몇 달 만에 '비즈니스의 속도'가 되었고, 몇 년 뒤에는 '답답하고 지루한 속도'가 되었다. 영국 전역에는 '철도 광풍'이 불어닥쳤다. 어제까지 기차를 악마의 도구라 부르던 사람들이 철도 주식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던졌고,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감각'이었을 뿐이다. 그 영역이 경험의 범주로 들어오는 순간, 공포는 찬란한 효용으로 탈바꿈했다.
200년이 지난 오늘, 인류는 또 다른 형태의 '로코모션 1호'인 인공지능(AI)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눈부신 기술의 가속과 더딘 인식의 간극이 만들어낸 '사회적 멀미'를 앓고 있다. 19세기의 의사가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KTX 안에서 평온하게 커피를 마시는 현대인을 본다면 기절초풍할 일이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일 뿐이다.
AI의 파괴력은 분명 거대하지만, 인간의 적응력은 언제나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한 수 위였다. 이 기차는 멈추지 않으며 뒤를 돌아볼 백미러도 없다. 이제 남은 선택은 하나다. 이 속도에 우리의 감각을 맞추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기술은 언제나 그렇게 인류의 자리를 재편해 왔고, 사피엔스는 그 변화의 끝에서 항상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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