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새책] 격변의 시대, 위기를 지배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7 09:29

수정 2026.03.27 09:29

동서고금 역사 속에서 찾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
지금은 지정학·기정학·자정학 3개가 중첩하는 위기 국면
두려움 아닌 확신 전파하고 기본에 충실, 心理 장악해야
격변의 시대, 위기를 지배하라 / 김경준 / 원앤원북스
격변의 시대, 위기를 지배하라 / 김경준 / 원앤원북스

[파이낸셜뉴스] 평생 독신으로 44년간 왕좌에 있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 그는 재위기간 내내 국내 종교 갈등, 권력 기반 분열, 프랑스와 스페인의 침략 위협, 외교적 고립이라는 살얼음판 같은 위기를 겪었다. 이에 맞서 그는 치밀한 심리전, 외교전, 정치전으로 대응했다.

한 예로 네덜란드에 은밀하게 자금과 병력을 지원해 스페인을 약화시켰고, 프랑스에는 가톨릭과 개신교(위그노)의 종교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영국 침공 의지를 무력화했다. 스페인과의 결전을 앞두고 그는 템즈강에서 “나는 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왕의 심장과 용기를 갖고 있다”는 연설로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 무적함대를 격퇴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wikipedia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wikipedia

‘처녀 여왕’이라는 자신의 현실까지 활용했다.

프랑스·스페인·오스트리아·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 왕실들과 ‘결혼 카드’를 흘려 영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줄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정치·외교적으로 상대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경쟁국들의 욕망·두려움을 역(逆)지렛대로 활용하는 수법으로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을 달성해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기틀을 닦았다.

요나라(거란) 장수 소손녕이 993년에 1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공격함으로써 고려는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고려의 협상단을 이끈 서희는 적장(敵將)의 심리를 건드렸다. 일부러 협상장에 늦게 들어가 상대를 자극했고 회담장 좌석 배치, 참석 인원 같은 작은 문제로 시간을 끌었다.

소손녕이 “요나라는 고구려 옛 땅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우리에게 서경(평양) 이북 고구려땅을 넘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서희는 “국호를 고려로 쓰는 우리가 고구려를 계승했다. 옛 고구려 영토인 거란 수도인 동경(요양)을 고려에 내놓아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냉정함과 대담함, 전략적 사고를 잃지 않았던 서희는 담판 끝에 강동 6주(州)를 새로 얻었다.

고려시대 강동 6주 위치
고려시대 강동 6주 위치

두 사례는 아무리 살벌한 위기라도 잘만 대처하면 번영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저서 ‘격변의 시대, 위기를 지배하라’에서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펼쳐진 위기와 이에 맞선 응전 사례를 적확하고 간결한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위기 앞에서 리더가 장악해야 하는 것, ‘위기 속에서 판을 뒤집는 전략의 기술’ ‘위기를 지배하는 조직은 무엇이 다른가’ 등의 세 파트 아래 14개 장(章)에 걸쳐 세부적인 기법을 흥미진진한 사례를 곁들여 풀어낸다.

저자는 지금 우리나라 기업과 개인 모두 100여년 만에 가장 큰 격변을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량 지속된 국제질서가 바뀌는 지정학(地政學) 대변동에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역량이 큰 영향을 미치는 기정학(技政學), 천연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는 자정학(資政學)이란 3대 요인이 중첩·교차·변화하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위기적 국면이다.”

저자는 “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며,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위기를 넘어 재도약의 실마리를 붙잡고 더 큰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저자는 물질적 조건이나 주변 환경 변수 보다 핵심 가치 공유 같은 정신적 역량을 강조한다.

비전과 탄탄한 조직력, 충성심 같은 정신적 자산을 갖추어야 “호황은 좋다. 그러나 불황은 더 좋다”(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는 식의 자신감과 위기 극복 능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저자 특유의 쿨하고 간결한 필치로 ‘두려움이 아닌 확신을 전염시켜라’ ‘가장 단단한 지지 기반부터 지켜라’ ‘심리를 장악한 쪽이 승리한다’ ‘보상 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 같은 장이 특히 술술 잘 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을 포함해 30년 넘게 컨설팅 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오십이라면 군주론’ ‘사장이라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등 30여권의 저서를 냈다.


KBS, MBC, SBS 등 방송 매체에 출연했으며 조선·동아·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시사저널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융합형 전문가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